‘아! 옛날이여’가 실려 있는 이선희 1집(1985년).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77) 강변가요제와 이선희
이쯤에서 1980년대 중반 대학생가요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엠비시 대학가요제 얘기는 몇 차례 다룬 적이 있으니, 이번엔 엠비시 강변가요제에 집중해보자. 1979년 강변축제란 이름으로 시작된 강변가요제는 첫해 홍삼트리오의 〈기도〉(대상 수상곡)를 히트시켰지만 한동안 대학가요제의 위세에 밀려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행사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통념의 밑바닥에는 강변가요제가 출전 자격에 서 대학가요제보다 유연하기 때문이란 학벌주의적 시각도 엄존했는데, 이는 ‘슬프지만 진실’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강변가요제는 대학가요제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그 시발점은 1983년 손현희의 〈이름 없는 새〉(대상)를 들 수 있겠지만, 진정한 대박은 1984년 5회 대회 때 터졌다. 바로 혼성 듀엣 4막 5장이 부른 〈J에게〉(대상)이다. 4막 5장의 여성 리드 보컬이 1980년대 중후반 가요계를 호령한 이선희란 사실은 당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겐 사족이다.
〈J에게〉는 1984년 하반기 최대 히트곡으로 떠올랐고 여세를 몰아 이선희는 이듬해 초 지구레코드를 통해 솔로로 데뷔했다. 이선희의 데뷔작은 타이틀곡 〈아! 옛날이여〉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고 〈갈등〉 역시 인기를 얻으면서 가요계의 새로운 디바가 탄생했음을 알렸다. 2집 역시 타이틀 곡 〈갈바람〉을 차트 상위권에 올리며 연속안타를 쳤고, 이런 기세는 1980년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1980년대 하반기는 이선희의 전성시대였다. 1986년 발매된 3집부터 1990년 6집까지 넉 장의 앨범은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만큼 히트했다. 3집에서는 양인자 김희갑 콤비가 작사·작곡을 맡은 발라드 〈알고 싶어요〉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고 경쾌한 분위기의 〈영〉도 그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당대의 메이저 중의 메이저’였던 지구레코드 시절 베테랑 송라이터와 연주자의 뒷받침을 받았던 이선희는 3집을 끝으로 지구레코드와 결별하고 이후 해광기획 소속으로 서울음반에서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4집부터 이선희는 좀더 젊은 송라이터와 연주자를 초빙하고 음악적으로도 자기색을 정련해 나갔다. 4집은 〈나 항상 그대를〉 〈사랑이 지는 이 자리〉를 차트 정상에 올렸을 뿐 아니라 신예 작곡가 송시현을 인기 작곡가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작곡가군에 김범룡, 김창완, 이재성 등을 추가한 5집은 〈나의 거리〉 〈오월의 햇살〉 〈한바탕 웃음으로〉의 히트로 결실을 맺었으며, 6집은 〈왜 나만〉과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로 롱런을 이어갔다.
작은 체구에서 믿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이선희의 보컬은 단숨에 그리고 오래도록 대중들의 감성을 흡인했다. 맑고 순수하면서 당찬 이미지까지 겸비한 이선희는 수많은 누나부대와 언니부대를 팬층으로 확보했다. 이선희는 1980년대 중후반 소녀팬들의 독보적인 우상이었지만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성장해갔다.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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