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 화백
만화 ‘조선왕조실록’ 그리는 박시백 화백
“마우스를 움직일 때 어깨통증이 만만치 않아요. 의사는 괜찮을 거라지만 짬짬이 쉬어주고 있어요.”
최근 만화 〈조선왕조실록〉 제9권 ‘인종·명종실록’을 낸 박시백(42) 화백한테서는 반환점을 찍은 마라토너처럼 기분좋은 피곤함과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2002년에 10년을 예정하고 의정부로 숨어든지 5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2년 시작 9권 ‘인종·명종실록’ 완성
황희 정승 ‘부정부패’…공양왕 ‘의욕적’
승자의 역사와 다른 ‘진실’ 숨겨져 있어 “애초 물정 모르고 달려들었던 거죠. 길어야 7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두세 권 그리다 말겠지 하던 우려와 달리 5~6개월 단위로 꾸준히 후속편을 내왔을 뿐 아니라 처음과 다름없이 고른 수준의 질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 선조실록 스토리 구성에 앞서 자료조사를 하고 있는데 재위 25년까지의 기록이 부실해 참고자료를 많이 보고 있다. “텔레비전 역사 드라마가 야사기록에 의존해 사실과 다른 경우가 잦았어요. 실록을 들여다보니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예컨대 무학대사가 서울 터를 잡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록을 보면 이성계와 대신들이 직접 답사하고 천도를 결정해가는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또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또는 청렴한 인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이 사실은 상황판단과 결단력이 뛰어나고 부정부패와 뇌물에 연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통념과 다른 사실을 찾아내거나 나름대로 근거를 찾아 다른 결론에 이를 때 짜릿함을 느낍니다.”
허수아비의 대명사로 묘사되는 공양왕이 사실은 이성계가 낙마했을 때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려 할 만큼 의욕적인 왕이었다, 왕권주의자 태종의 동일한 심복이지만 하륜과 이숙번의 운명이 갈린 것은 이숙번이 젊어 세자 양녕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 화백이 내린 득의의 해석이다. “득세한 세력이 실록을 기록하는 탓에 왜곡되기도 하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사관들이 여기저기 숨겨놓은 열쇠가 있습니다.” 실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전달과 만화적 재미의 균형을 맞추기가 가장 어려웠다는 그는 상황에 따라 설명적, 혹은 드라마틱한 구성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당대의 사건을 현대의 그것과 병치시키는 것은 만화의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등장인물이 많아지면서 그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초상화가 있는 인물은 문제없지만 허리가 구부정하다, 기골이 장대하다 등 단편 기록만으로 재구성하다보니 상호 변별력이 떨어지는 것.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대인 가운데 성향이 비슷한 인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또 각종 용어와 복식, 건축양식의 구현도 애를 먹고 있다. 꼼꼼히 조사한다고는 했지만 예리한 독자의 눈을 비켜가지 못한다. 조선전기 무관복식이 후기의 것으로, 면류관의 주렴이 9줄인데 12줄로 잘못 그렸다는 지적도 받았다. “만화니 만큼 역사 입문서로 봐 주었으면 해요.” 잘못을 바로잡아 개정판을 내고 싶다고 하지만 적어도 2011년까지는 여유가 없지 싶다고 말했다. 홀로 왕조실록과 씨름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참아줘야 할 법하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황희 정승 ‘부정부패’…공양왕 ‘의욕적’
승자의 역사와 다른 ‘진실’ 숨겨져 있어 “애초 물정 모르고 달려들었던 거죠. 길어야 7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두세 권 그리다 말겠지 하던 우려와 달리 5~6개월 단위로 꾸준히 후속편을 내왔을 뿐 아니라 처음과 다름없이 고른 수준의 질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 선조실록 스토리 구성에 앞서 자료조사를 하고 있는데 재위 25년까지의 기록이 부실해 참고자료를 많이 보고 있다. “텔레비전 역사 드라마가 야사기록에 의존해 사실과 다른 경우가 잦았어요. 실록을 들여다보니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예컨대 무학대사가 서울 터를 잡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록을 보면 이성계와 대신들이 직접 답사하고 천도를 결정해가는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또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또는 청렴한 인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이 사실은 상황판단과 결단력이 뛰어나고 부정부패와 뇌물에 연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통념과 다른 사실을 찾아내거나 나름대로 근거를 찾아 다른 결론에 이를 때 짜릿함을 느낍니다.”
허수아비의 대명사로 묘사되는 공양왕이 사실은 이성계가 낙마했을 때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려 할 만큼 의욕적인 왕이었다, 왕권주의자 태종의 동일한 심복이지만 하륜과 이숙번의 운명이 갈린 것은 이숙번이 젊어 세자 양녕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 화백이 내린 득의의 해석이다. “득세한 세력이 실록을 기록하는 탓에 왜곡되기도 하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사관들이 여기저기 숨겨놓은 열쇠가 있습니다.” 실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전달과 만화적 재미의 균형을 맞추기가 가장 어려웠다는 그는 상황에 따라 설명적, 혹은 드라마틱한 구성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당대의 사건을 현대의 그것과 병치시키는 것은 만화의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등장인물이 많아지면서 그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초상화가 있는 인물은 문제없지만 허리가 구부정하다, 기골이 장대하다 등 단편 기록만으로 재구성하다보니 상호 변별력이 떨어지는 것.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대인 가운데 성향이 비슷한 인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또 각종 용어와 복식, 건축양식의 구현도 애를 먹고 있다. 꼼꼼히 조사한다고는 했지만 예리한 독자의 눈을 비켜가지 못한다. 조선전기 무관복식이 후기의 것으로, 면류관의 주렴이 9줄인데 12줄로 잘못 그렸다는 지적도 받았다. “만화니 만큼 역사 입문서로 봐 주었으면 해요.” 잘못을 바로잡아 개정판을 내고 싶다고 하지만 적어도 2011년까지는 여유가 없지 싶다고 말했다. 홀로 왕조실록과 씨름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참아줘야 할 법하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