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인 김시종
‘조선시집’ 번역한 재일동포 원로시인 김시종
“고국과 일본/나 사이에 얽힌/거리는 서로 똑같다면 좋겠지//사모와 견딤/사랑이 똑같다면/견뎌야만 하는 나라 또한/똑같은 거리에 있겠지”(김시종 〈똑같다면〉 첫 두 연, 유숙자 옮김)
김시종(78) 시인은 재일 1세대를 대표하는 동포 시인이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성장한 그는 1948년 4·3 항쟁과 관련해 일본으로 밀항한 뒤 지금까지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장시 〈니가타〉(1970)와 〈이카이노시집〉(1978), 그리고 광주항쟁을 노래한 연작시집 〈광주시편〉(1983) 등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냈다. 2004년에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일본어로 번역 출간했고,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서정주 등의 시를 골라 번역한 〈조선시집〉 역시 올 4월께 일본의 대표적 출판사인 이와나미에서 펴낼 예정이다.
“〈조선시집〉은 일본에서 한국 시의 정본으로 통하는 김소운 편역 〈조선시집〉에 실린 작품을 그대로 골라서 김소운과는 달리 번역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김소운의 번역은 일본의 단시 음률을 살리느라 원문을 지나치게 훼손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 독자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지만, 번역으로서는 잘못된 것이죠. 제 번역본에는 한국어 원문과 일본어 번역을 함께 실어서 독자들이 대조해 보도록 했습니다.”
김소운의 〈조선시집〉을 내고 있는 이와나미에서 김시종씨의 〈조선시집〉을 다시 낸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기존 번역본 역시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를 ‘살자고 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식으로 옮긴 것은 일본의 상투어일 뿐만 아니라 시의 의미를 아예 거꾸로 왜곡한 것이죠.”
조국현실 담은 시 꾸준히 발표…윤동주 시 오역 바로잡기도
코리아국제학원 준비위장 맡아 “민단·총련 초월 동포운동” 〈서시〉의 첫 구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의 ‘하늘’을 두고도 기존 번역본이 ‘소라(空)’로 옮긴 데 비해 김시종씨는 절박한 기원의 뜻을 담도록 ‘덴(天)’으로 풀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에서 ‘죽음’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고자 뒤엣것을 “모든 숨이 끊어지는 것을”로 옮긴 것도 김시종 번역의 득의의 지점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연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의 ‘스치운다’에 관한 한 그는 스스로 최고의 일본어 번역을 자부한다. 〈조선시집〉과 윤동주 시집 번역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김시종씨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시에 있다. 그의 근거지이기도 한 오사카의 조선인 거주지역을 노래한 〈이카이노시집〉, 북송선이 출항했던 북위 38도선의 항구 니가타를 무대로 자신 속의 38선을 고백한 장시 〈니가타〉, 그리고 그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광주시편〉 등에서 그는 한결같이 조국과 민족의 현실을 상대로 문학적 대결을 펼쳐 왔다. 그 결과 그는 초판 1천부를 소화하기 힘든 일본 시단의 현실에서는 극히 드물게 시만 써서 생계를 해결해온 전업 시인으로 설 수 있었다.
평생 한반도 남과 북의 통일을 염원하면서 ‘조선’ 국적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밀항 이후 무려 반 세기 만인 지난 1998년 고향 제주를 처음 방문한 데 이어 2004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제주작가회의가 주최한 ‘재일 제주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대를 받아 다시 고향을 찾았다. 일찍이 1950년대 후반에 김일성 우상화를 비판하면서 결국 총련에서도 뛰쳐나오게 된 그는 그럼에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쪽 동포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그는 내년 봄 개교 예정인 ‘코리아 국제학원’ 설립준비위원장을 맡아 부지런히 뛰고 있다. 민단과 총련의 경계를 넘음은 물론 일본인과 외국인까지 학생으로 받아들여 한국(조선)어와 일본어, 영어를 두루 가르치게 될 이 학교에서 그는 학원장과 교장을 맡을 참이다. 역시 재일동포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가 이사장을 맡는다. “기왕의 민단쪽 학교와 총련계 민족학교는 서로 융합하기는커녕 대립하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 치중했어요. 코리아 국제학원 개교는 동포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을 새로운 이정표라 자부합니다. 민단과 총련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방향의 동포 운동이 펼쳐지는 것이죠.” 오사카/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코리아국제학원 준비위장 맡아 “민단·총련 초월 동포운동” 〈서시〉의 첫 구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의 ‘하늘’을 두고도 기존 번역본이 ‘소라(空)’로 옮긴 데 비해 김시종씨는 절박한 기원의 뜻을 담도록 ‘덴(天)’으로 풀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에서 ‘죽음’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고자 뒤엣것을 “모든 숨이 끊어지는 것을”로 옮긴 것도 김시종 번역의 득의의 지점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연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의 ‘스치운다’에 관한 한 그는 스스로 최고의 일본어 번역을 자부한다. 〈조선시집〉과 윤동주 시집 번역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김시종씨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시에 있다. 그의 근거지이기도 한 오사카의 조선인 거주지역을 노래한 〈이카이노시집〉, 북송선이 출항했던 북위 38도선의 항구 니가타를 무대로 자신 속의 38선을 고백한 장시 〈니가타〉, 그리고 그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광주시편〉 등에서 그는 한결같이 조국과 민족의 현실을 상대로 문학적 대결을 펼쳐 왔다. 그 결과 그는 초판 1천부를 소화하기 힘든 일본 시단의 현실에서는 극히 드물게 시만 써서 생계를 해결해온 전업 시인으로 설 수 있었다.
평생 한반도 남과 북의 통일을 염원하면서 ‘조선’ 국적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밀항 이후 무려 반 세기 만인 지난 1998년 고향 제주를 처음 방문한 데 이어 2004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제주작가회의가 주최한 ‘재일 제주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대를 받아 다시 고향을 찾았다. 일찍이 1950년대 후반에 김일성 우상화를 비판하면서 결국 총련에서도 뛰쳐나오게 된 그는 그럼에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쪽 동포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그는 내년 봄 개교 예정인 ‘코리아 국제학원’ 설립준비위원장을 맡아 부지런히 뛰고 있다. 민단과 총련의 경계를 넘음은 물론 일본인과 외국인까지 학생으로 받아들여 한국(조선)어와 일본어, 영어를 두루 가르치게 될 이 학교에서 그는 학원장과 교장을 맡을 참이다. 역시 재일동포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가 이사장을 맡는다. “기왕의 민단쪽 학교와 총련계 민족학교는 서로 융합하기는커녕 대립하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 치중했어요. 코리아 국제학원 개교는 동포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을 새로운 이정표라 자부합니다. 민단과 총련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방향의 동포 운동이 펼쳐지는 것이죠.” 오사카/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