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싱의 노신 옛집 표지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한국 문인들. 오른쪽부터 차례로 이현수 정현종 홍정선 황동규 성석제 조은 김주영씨 등이다.
‘아큐’가 즐겨쓴 모자…‘공을기’ 조각상과 안주거리…
한·중작가회의 참가자들 루쉰 고향 문학답사
외곽에 자리잡은 ‘난정’엔 왕희지 시절 운치가 중국 남동부의 소도시 샤오싱(소흥)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국 술 소흥주의 고장이자 문인 겸 사상가 루쉰(1881~1936)의 고향이기도 하다. 황동규 김주영 오정희 성석제씨 등 20명 가까운 한국 문인들이 지난 13일 소흥주와 루쉰의 고장 샤오싱을 찾았다. 9, 10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1회 한·중작가회의가 끝난 뒤였다. 샤오싱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이곳에서 보낸 루쉰은 중학을 난징에서 다니고 일본 유학을 거쳐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귀국해 다시 샤오싱에서 몇 년 간 거주한다. 루쉰이 유복하고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낸 백화원, 그가 다닌 동네 서당 삼미서옥 등이 자리한 골목 양옆으로는 삼미서옥의 옥호와 루쉰의 사진을 새긴 수정 서진과 부채, 루쉰의 대표작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가 즐겨 썼던 이 지방 고유 모자, 그리고 소흥주와 용정차 등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가히 ‘루쉰 산업’이라 할 만한 면모였다. 특히 루쉰의 소설 주인공인 ‘공을기’의 이름을 딴 소박한 안주들이 눈길을 끌었다. 일행이 점심을 먹은 루쉰 옛집 인근의 ‘함형주점’은 바로 공을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편 <공을기>의 무대가 된 곳이다. 과거시험을 준비할 뿐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던 전통적인 선비 공을기가 한갓 외상 술꾼으로 전락해 드나들던 주점 앞에는 공을기의 비루하면서도 안쓰러워 보이는 조각상이 서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공을기는 분명 낡은 중국을 상징하는 고루한 인물이지만, 루쉰은 그에 대한 비판에만 치우치지 않고 어느 정도의 동정 역시 보였습니다. 공을기를 내세운 가게와 물건들은 공을기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정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루쉰 전문가인 중문학자 성민엽(본명 전형준·서울대 중문과 교수)씨의 설명이었다. 일행이 루쉰의 생애와 문학적 업적을 시기별로 정리해 놓은 루쉰기념관을 관람하는 동안 성씨는 열정적인 강의로 이해를 도왔다. “중국 학자들은 때에 따라 루쉰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거나 극단적으로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모두 당이 만든 루쉰의 이미지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하기 이전의 루쉰과 이후의 루쉰을 하나의 틀로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루쉰 유적을 답사하기에 앞서 이날 오전 일행은 샤오싱 외곽의 정자 난정을 찾았다. 난정은 중국 최고의 명필 왕희지의 역작 <난정서>가 탄생한 곳이다. 청나라의 최성기를 이룬 강희제와 건륭제의 친필을 새긴 난정비는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의 망치질에 조각 났다가 복구되어 흉한 자국을 드러냈다. 경주의 포석정을 닮은 ‘유상곡수’에 소흥주 잔을 띄워 마시며 문인들은 왕희지 시절의 운치를 다시 맛보았다.
샤오싱에 오기 전 한국 문인들은 항저우와 퉁리, 우전 등을 먼저 들렀다. 송대의 시인 소동파가 항저우 지사로 있으면서 바닥을 준설하고 제방을 쌓았다는 서호의 유람선에서 시인 정현종씨는 “서호에 왔네/삼담인월도/스물네 명/대낮인데 달이 스물네 개가 떴네/관광을 하면/비범한 사람들도 보통 사람이 되는 법/우리는 서호에 와서/비로소 보통 사람이 되었다네/이번 여행의/제일 큰 소득”이라는 즉석 시를 지어 읊어 큰 박수를 받았다. 우전은 중국 사실주의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자야(子夜)>의 작가 마오둔(1896~1981)의 고향. 경항(베이징-항저우)대운하의 새끼 운하를 품고 있는 운치있는 마을이었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돌다리들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야간 조명을 받아 자못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련한 눈길로 풍경을 훑던 소설가 천운영씨가 꿈을 꾸듯 내뱉었다. “전생에 와 본 곳 같아.” 샤오싱·항저우·우전(중국)/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외곽에 자리잡은 ‘난정’엔 왕희지 시절 운치가 중국 남동부의 소도시 샤오싱(소흥)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국 술 소흥주의 고장이자 문인 겸 사상가 루쉰(1881~1936)의 고향이기도 하다. 황동규 김주영 오정희 성석제씨 등 20명 가까운 한국 문인들이 지난 13일 소흥주와 루쉰의 고장 샤오싱을 찾았다. 9, 10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1회 한·중작가회의가 끝난 뒤였다. 샤오싱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이곳에서 보낸 루쉰은 중학을 난징에서 다니고 일본 유학을 거쳐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귀국해 다시 샤오싱에서 몇 년 간 거주한다. 루쉰이 유복하고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낸 백화원, 그가 다닌 동네 서당 삼미서옥 등이 자리한 골목 양옆으로는 삼미서옥의 옥호와 루쉰의 사진을 새긴 수정 서진과 부채, 루쉰의 대표작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가 즐겨 썼던 이 지방 고유 모자, 그리고 소흥주와 용정차 등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가히 ‘루쉰 산업’이라 할 만한 면모였다. 특히 루쉰의 소설 주인공인 ‘공을기’의 이름을 딴 소박한 안주들이 눈길을 끌었다. 일행이 점심을 먹은 루쉰 옛집 인근의 ‘함형주점’은 바로 공을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편 <공을기>의 무대가 된 곳이다. 과거시험을 준비할 뿐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던 전통적인 선비 공을기가 한갓 외상 술꾼으로 전락해 드나들던 주점 앞에는 공을기의 비루하면서도 안쓰러워 보이는 조각상이 서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공을기는 분명 낡은 중국을 상징하는 고루한 인물이지만, 루쉰은 그에 대한 비판에만 치우치지 않고 어느 정도의 동정 역시 보였습니다. 공을기를 내세운 가게와 물건들은 공을기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정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루쉰 전문가인 중문학자 성민엽(본명 전형준·서울대 중문과 교수)씨의 설명이었다. 일행이 루쉰의 생애와 문학적 업적을 시기별로 정리해 놓은 루쉰기념관을 관람하는 동안 성씨는 열정적인 강의로 이해를 도왔다. “중국 학자들은 때에 따라 루쉰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거나 극단적으로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모두 당이 만든 루쉰의 이미지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하기 이전의 루쉰과 이후의 루쉰을 하나의 틀로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명필 왕희지가 문우들과 어울려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 마시며 시를 짓고 놀았던 샤오싱 난정의 ‘유상곡수’에서 시인 정현종씨가 선녀 차림을 한 현지 처자가 물에서 건져 건네는 술잔을 받아 들고 있다.
루쉰 유적을 답사하기에 앞서 이날 오전 일행은 샤오싱 외곽의 정자 난정을 찾았다. 난정은 중국 최고의 명필 왕희지의 역작 <난정서>가 탄생한 곳이다. 청나라의 최성기를 이룬 강희제와 건륭제의 친필을 새긴 난정비는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의 망치질에 조각 났다가 복구되어 흉한 자국을 드러냈다. 경주의 포석정을 닮은 ‘유상곡수’에 소흥주 잔을 띄워 마시며 문인들은 왕희지 시절의 운치를 다시 맛보았다.
샤오싱에 오기 전 한국 문인들은 항저우와 퉁리, 우전 등을 먼저 들렀다. 송대의 시인 소동파가 항저우 지사로 있으면서 바닥을 준설하고 제방을 쌓았다는 서호의 유람선에서 시인 정현종씨는 “서호에 왔네/삼담인월도/스물네 명/대낮인데 달이 스물네 개가 떴네/관광을 하면/비범한 사람들도 보통 사람이 되는 법/우리는 서호에 와서/비로소 보통 사람이 되었다네/이번 여행의/제일 큰 소득”이라는 즉석 시를 지어 읊어 큰 박수를 받았다. 우전은 중국 사실주의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자야(子夜)>의 작가 마오둔(1896~1981)의 고향. 경항(베이징-항저우)대운하의 새끼 운하를 품고 있는 운치있는 마을이었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돌다리들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야간 조명을 받아 자못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련한 눈길로 풍경을 훑던 소설가 천운영씨가 꿈을 꾸듯 내뱉었다. “전생에 와 본 곳 같아.” 샤오싱·항저우·우전(중국)/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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