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천운영씨가 21일 김소진의 무덤 앞에서 김소진의 등단작 <쥐잡기>의 일부를 낭독하는 동안 추모식에 참석한 문우들이 숙연하게 듣고 있다.
문인 50여명 ‘추모문집’ 무덤 옆에 묻어
소설가 김소진(1963~1997)의 10주기 추모식이 21일 낮 경기도 용인공원묘원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김정환 신현림 박상순 안찬수 장철문(이상 시인) 이혜경 은희경 성석제 김인숙 권여선 박현욱 전성태 김중혁 천운영 윤성희 편혜영(이상 소설가) 류보선 서영채 정홍수 진정석 신수정 김영찬 손정수(이상 평론가)씨를 비롯한 문우들과 학교 후배인 오철우(<한겨레> 기자)씨 등 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삶과 문학을 되새겼다.
진정석씨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행사에서는 후배 소설가 전성태 천운영 윤성희씨가 김소진 소설의 일부를 낭독했으며, 김정환씨가 추모시를 읽은 데 이어 추모문집 <소진의 기억>을 무덤 옆에 묻는 의식이 진행됐다.
먼저 낭독에 나선 전성태씨는 “김소진 선배님이 암 투병 중이라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갔지만, 병실엔 들어가지 못하고 열린 문 틈으로 무릎과 종아리 언저리만 살짝 보고 나온 뒤 몇 시간 만에 부음을 들었다”면서 “살아 계셨다면 글 쓰는 동료로서 서로 외롭지 않았을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다. 전성태씨가 <고아떤 뺑덕어멈> 중 주인공이 아버지의 화대를 대신 지불하는 대목을 낭독하고 나자 진정석씨는 “김소진과 전성태씨는 여러 모로 상통하는 소설 세계를 지니고 있는 작가라서 소진이 살아 있었다면 두 사람이 잘 어울렸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낭독자인 천운영씨는 자신이 습작기에 처음 썼던 작품 ‘쥐덫’과 김소진의 등단작 <쥐잡기>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소진의 기억>에도 실린 이 이야기를 소개한 데 이어 그는 “<쥐잡기>를 읽고서 거기 쓰인 순우리말과 토속어 어휘에 자극 받아 당장 헌책방으로 달려가 두툼한 국어대사전을 사 왔던 기억이 난다”며 “그때 읽었던 김소진의 책을 다시 펼쳐 보니 당시 내가 몰랐던 단어들에 밑줄이 쳐져 있고, 내가 특히 좋아했던 부분에는 네모 표시가 되어 있다”면서 <쥐잡기> 중 자신이 네모 표시를 했던 부분을 읽었다.
마지막으로 윤성희씨가 낭독에 나섰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의 마지막 부분을 읽운 그는 “주인공이 재개발을 앞둔 산동네 빈집에 들어가 똥을 누는 장면인데, 이 장면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나도 소설을 쓸 때면 꼭 똥을 누는 장면을 포함시키곤 했다”고 소개했다.
추모문집 <소진의 기억>을 무덤 곁에 묻는 것으로 공식 추모 행사를 마무리한 일행은 무덤 주변에 자리를 깔고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으며 고인을 추억했다. 추모 문집과 추모식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친구 정홍수씨는 “소풍 치고는 너무도 좋은 소풍”이라며 “매번 올 때마다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게 아무래도 무덤 속 소진이가 힘을 써 주는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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