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눈
디아스포라의 눈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지 1년 남짓 됐다. 여기 오기 전에 예상한 대로였던 것도 있고 예상을 벗어난 것도 있다. 예상을 벗어난 것 중 하나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본인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재일조선인인데, 과거 1960년대 후반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아직 일제시대의 기억이 생생했던 탓인지 우리 ‘재일동포’한테까지 일본인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인이 아니며,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배와 차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일본인 취급 당한 것은 너무나 부조리한 체험이었다. 다른 ‘재일동포’한테서도 같은 생각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조국 사람들의 감정에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지니아에서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가 온 국민이 참회할 일인가. 그보단 베트남 참전이나 식민지 침략 같은 범죄를 저지른 정부를 선택하고 지지한 책임을 한국과 일본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집단적 죄와 국민적 책임을 뒤바꿔놓고 무책임을 정당화하는 국민이 되지 말자. 올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지켜보고 싶다.
내 파트너는 일본인이다. ‘아내’라든가 ‘처’라는 말을 알고는 있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파트너’라 부르기로 했다. 그도 나와 함께 서울에 와서 어느 대학 어학당에 다니면서 지내고 있다. 여기 오기 전에는 나름대로 꽤 긴장하고 각오도 한 모양이지만 지금까지 1년간 일본인이라는 것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은 전혀 없다. 단 한 번 빵을 사러 갔을 때 가게 주인한테서 “독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것도 비난이나 힐난하는 투는 아니었고, 흥미로운 화젯거리를 꺼냈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대단히 친절했다. 기쁜 일이지만, 정말 이래도 좋은가 싶은 복잡한 기분이 나도 파트너한테도 있다. 그는 ‘일본인이라는 죄’라는 개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일본 국민으로서의 책임’은 자신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되풀이해서 애도의 말을 하고 주미 한국 대사가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의 필요성을 호소한 데 대해 나는 큰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히 말하자면 미국인이 싫어하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비굴한 식민지근성 같은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이런 반응은 ‘집단적 죄’와 ‘국민적 책임’이라는, 원래 명백히 구별해야 할 두 가지 개념을 혼동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크다고 본다.
어느 민족 출신자 누구가 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민족 구성원 전체에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됐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민족집단 전체의 추방이나 학살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위험한 일이다. 버지니아 공과대학과 같은 사건을 한국에서 일본인 학생이 저질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본인의 잔학한 본성’이라든지 ‘피와 폭력을 즐기는 일본인의 민족성’ 따위를 들먹이며 반일본인 감정이 확산됐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건 버지니아 사건을 ‘한국인의 민족성’에 결부시켜 떠드는 게 잘못된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집단적 죄’라는 개념은 잘못됐지만, 한편으론 어느 나라 정부가 정책적으로 그런 짓을 했다면 그 정부를 선택하고 지지하는 국민에게도 응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사건에 대해 한국 대통령이나 대사가 애도나 “참회”를 입에 올리는 건 잘못 짚은 것이지만 한국 정부가 일찍이 국가정책으로 베트남에 파병하고 많은 베트남인들을 살상한 일에 대해서는 거듭 정중하게 사죄하고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국민에게는 자신들의 정부한테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든 ‘국민으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한국인이 베트남인에 대해 죄송하다는 마음을 갖는 게 건전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만약 과거 베트남 파병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한다면 지금의 이라크 파병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나를 가장 낙담케 한 것은 이른바 ‘지적(知的)인’ 일본인의 다음과 같은 상투어였다. “일본 국가가 범한 죄를 이유로 일본인 개인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애초에 나라는 개인은 원해서 일본인으로 태어난 게 아니다. 그런 나에게 ‘일본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일본 국가의 책임을 지우려 하는 건 부당하다. 당신이야말로 ‘집단적 죄’라는 잘못된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거다.” 이런 것이야말로 죄와 책임의 개념을 뒤바꿔 놓은 무책임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죄가 없더라도 책임은 있는 것이다. ‘위안부’ 제도의 책임을 부인하려는 정부를 택한 국민에게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 정책을 바꾸도록 만들지 않으면 국가범죄는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도조 히데키가 일본인이었다고 해서 일본인 모두가 도조 히데키인 건 아니다. 하지만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라는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우파정권을 지금까지 존립시키고 있는 일본 국민에겐 ‘국민으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보도를 보니, 일본의 7월 참의원선거에 도조 히데키의 손녀가 입후보할 모양이다.
그가 도조의 손녀라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도조를 비롯한 A급 전범의 명예를 지키자는 것이고, 일본의 침략전쟁 범죄를 단죄한 ‘도쿄재판사관’을 바로잡자는 것이란다. 이런 정치가를 또 한 사람 늘릴지 말지는 일본 국민의 책임이 걸린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죄와 책임의 개념을 뒤바꿔 놓고 자신의 무책임을 정당화하는 그런 국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 말 대통령선거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있다. 한국 국민이 책임있는 선택을 할지,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어느 민족 출신자 누구가 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민족 구성원 전체에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됐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민족집단 전체의 추방이나 학살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위험한 일이다. 버지니아 공과대학과 같은 사건을 한국에서 일본인 학생이 저질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본인의 잔학한 본성’이라든지 ‘피와 폭력을 즐기는 일본인의 민족성’ 따위를 들먹이며 반일본인 감정이 확산됐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건 버지니아 사건을 ‘한국인의 민족성’에 결부시켜 떠드는 게 잘못된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집단적 죄’라는 개념은 잘못됐지만, 한편으론 어느 나라 정부가 정책적으로 그런 짓을 했다면 그 정부를 선택하고 지지하는 국민에게도 응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사건에 대해 한국 대통령이나 대사가 애도나 “참회”를 입에 올리는 건 잘못 짚은 것이지만 한국 정부가 일찍이 국가정책으로 베트남에 파병하고 많은 베트남인들을 살상한 일에 대해서는 거듭 정중하게 사죄하고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국민에게는 자신들의 정부한테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든 ‘국민으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한국인이 베트남인에 대해 죄송하다는 마음을 갖는 게 건전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만약 과거 베트남 파병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한다면 지금의 이라크 파병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나를 가장 낙담케 한 것은 이른바 ‘지적(知的)인’ 일본인의 다음과 같은 상투어였다. “일본 국가가 범한 죄를 이유로 일본인 개인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애초에 나라는 개인은 원해서 일본인으로 태어난 게 아니다. 그런 나에게 ‘일본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일본 국가의 책임을 지우려 하는 건 부당하다. 당신이야말로 ‘집단적 죄’라는 잘못된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거다.” 이런 것이야말로 죄와 책임의 개념을 뒤바꿔 놓은 무책임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죄가 없더라도 책임은 있는 것이다. ‘위안부’ 제도의 책임을 부인하려는 정부를 택한 국민에게는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들이 정부 정책을 바꾸도록 만들지 않으면 국가범죄는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도조 히데키가 일본인이었다고 해서 일본인 모두가 도조 히데키인 건 아니다. 하지만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라는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우파정권을 지금까지 존립시키고 있는 일본 국민에겐 ‘국민으로서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보도를 보니, 일본의 7월 참의원선거에 도조 히데키의 손녀가 입후보할 모양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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