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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세계는 문화전쟁중인데 ‥ 정부 관망만?

등록 2005-04-13 19:02수정 2005-04-13 19:02



■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 10월 채택 추진

“문화상품도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자유경쟁 시장에 맡겨야 한다.” “문화상품은 한 지역, 민족, 국가의 정체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책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크린쿼터(자국영화 의무 상영 일수) 제도의 존치 여부를 두고 국내에서 벌어져왔던 논쟁의 한 대목을 연상케 하는 이 논란이 유엔에서 전 세계를 한 단위로 삼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도화선은 유엔 산하기구인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난해 7월 문화 상품은 일반 상품과 다르다는 전제 아래 각국 정부의 자국 문화상품 보호 정책 수립·운영권을 국제 협약으로 보장하는 ‘문화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협약’(이하 문화다양성협약) 초안을 발표하면서 불붙었다. 협약 채택 시한이 오는 10월 유네스코 총회로 잡혀있으며 이보다 앞선 5월 마지막 회원국간 회의를 통해 총회 표결에 붙일 확정안 결정을 앞둔 상태에서 이 협약의 구체적인 안을 놓고 미국 대 유럽연합의 구도로 진영이 갈리면서 국제사회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13일 외교통상부와 국회 문화관광상임위,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 국내 16개 문화단체로 구성된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세문연, 공동대표 김정헌 문화연대 대표 등 5명)에 따르면 문화다양성 협약 초안이 발표된 뒤 지금까지 두차례 유네스코 회의를 진행한 결과 유럽연합과 캐나다,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의 상당수 회원국이 이 협약의 효력을 다른 국제협약보다 우위에 놓자는, 즉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미국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이 협약의 효력이 다른 국제협약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즉 상징적인 의미에 그치게 하자는 의견을 내 양쪽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회원국 중 24개국 정부인사로 구성된 이 협약 기초위원회의 아시아 참가국인 일본, 중국, 인도, 한국 4개국 가운데 중국과 인도는 법적강제력을 부여하자는 의견을 낸 반면 한국 정부만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경쟁 맡겨야” “보호 마땅”각국 첨예대립

정부, 미국반대 눈치보며 “태도정리 곤란”

“스크린쿼터 절로 해결” 문화단체만 분주

외교통상부의 구본우 문화외교국장은 “문화다양성 협약의 기본틀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장 정리는 곤란하다”면서 “세계무역기구(WTO)를 주도하는 나라의 입장에선 이미 채택한 국제협약을 뒤에 나온 국제협약으로 무효화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미국의 반대가 심하다”고 말했다. 문화외교국 김은정 사무관은 “생물다양성협약도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는 규정을 뒀지만 미국이 서명을 거부하는 바람에 사문화된 데 비춰보면 문화다양성 협약은 현실적이기보다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 반해 국내 문화단체들은 이 협약에 법적강제력을 줘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지난 8일 국회에서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과 토론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양기환 세문연 집행위원장은 “이 협약이 강제력을 갖게 되면 그동안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불거졌던 스크린쿼터 같은 문제가 저절로 우리쪽에 유리하게 풀리게 된다”면서 “그럼에도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한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태도로밖에 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문화다양성협약이 다른 국제협약에 우선하는 강제력을 갖게 될 경우 유네스코 회원국 간의 다자간, 또는 양국간 무역협정에서 문화상품 보호정책을 문제삼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한미투자협정(BIT)과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하지 않는 한 한국쪽에 스크린쿼터, 방송쿼터 등의 축소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정부와 문화단체 사이의 이런 입장 차이는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정명국 의원은 “문화를 경제적 논리로 접근해선 안된다”면서 “정부는 적극적으로 협약에 강제력을 부여하자고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 역시 “문화는 교역이 아닌 교류의 대상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정부는 미국처럼 단순한 교역의 가치로만 보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의 우상호 의원은 “원론적으로는 문화단체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미국이 협약에서 빠지게 되면 어떤 안이 채택돼도 무의미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신대 이해영(국제정치) 교수는 “이런 전형적인 국제정치 사안에서 정부가 입장이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협약에 강제력을 주자는 의견을 냈다고 해서 미국과의 통상교섭에서 손해볼 게 없으며 거꾸로 미국을 압력하는 힘이 될 수 있는데도 정부가 지레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유럽이 적극적으로 협약을 추진하고 나선 데는 문화상품 판매와 관련한 경제적 계산도 있겠지만,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에 경제는 내줘도 정신까지 내줄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깔려있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 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이 문제의 공론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유강문 기자,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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