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커 감독
‘중국의 젊은 거장’ 자장커 감독
‘시네마디지털서울’ 심사위원 맡아
개막작 ‘24시티’ 중국 계획경제 묘사 역사라는 큰 틀의 스크린에 인물이라는 각주로 숨을 불어넣은 영화. 중국의 젊은 거장 자장커 감독의 작품 세계를 요약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스틸 라이프>(원제:삼협호인)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그가 서울에 왔다. 디지털로 찍은 저예산 영화들의 축제인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CINDI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은 것이다. 그의 최근작이자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었던 <24시티>는 신디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지난 25일 오후, 신디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압구정씨지브이에서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스틸 라이프>에 이어 <24시티> 역시 자본주의적 개발의 이면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한편의 서사시처럼 보인다. <24시티>에서 말하려고 했던 주제는? “중국이 겪었던 계획경제 시절을 돌아보려고 했다.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자는 의미다. 반성과 숙고가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영화를 보면 당신은 자본주의적 개발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자 개인들에 대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좀 더 인도주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르바초프식으로 말하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원한다고 보면 되나?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새로운 체제가 나타난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드는데 정부의 간섭이나 방해는 없나? “내가 영화를 합법적으로 찍을 수 있게 된 것은 2003년 이후다. 정국 정부가 영화를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심의를 느슨하게 해줘 약간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 전의 작품들은 모두 심의를 받지 않은 작품들이라 중국 내에서는 상영하지 못했다. <24시티>도 올해 칸 영화제 초청 명단이 발표되기 3시간 전에야 심의 허가가 났다.” -중국 정부는 당신을 반체제 인사로 규정하고 있나?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너는 그렇게 중국의 어두운 모습을 찍으려고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오해다. 사회에 대한 하나의 예술적 이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번에 함께 한국에 온 이스라엘의 아모스 지타이 감독도 마찬가지인데, 자기 나라의 불편한 모습을 직시한 영화를 다른 나라에 보여준다면, 세계인들은 이스라엘이나 중국에 대한 혐오감 대신 존경심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가 걱정하는 그런 결과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문화를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일 뿐이다.” -올림픽이 끝났다. 거대한 제국의 꿈을 꾸는 중국이 자신의 힘을 세계 만방에 과시했다. 그러나 티베트 독립운동 탄압에서 보듯, 중국을 위험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있다. “올림픽 이후 중국은 굉장히 현대화되고, 대국이 됐다는 환각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현대화인지 생각해야 한다. 물질문명의 발전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중국인은 다시 한번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나친 민족주의 정서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 지원은 받은 적이 있나? “한번도 못 받았다.” -상업영화도 아닌데, 돈은 어디서 구하나? “제 영화를 선호하는 시장이 안정적이다. 유럽과 홍콩도 있고, 한국도 그렇다. 돈이 부족해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은 없다.” -카메라 움직임이나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조안 첸 등 3명의 여자는 분명히 연기를 하고 있는데,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은 모두 다큐인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겠다. “나의 초기 영화는 순수 다큐멘터리 작업이었다. 지금은 다큐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혼용하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합치면 현대 중국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소설이지만, 역사와 상상이 합쳐져 더 진실된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나는 관객들이 전문배우와 진짜 노동자를 더 확실히 구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들을 기용한 것은 그 때문이다. 진실과 허구, 상상과 현실이 섞여 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었다” -<스틸 라이프>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은 사전 정보를 입수해서 시간에 맞추어 찍은 것인가. “시간을 놓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우주선이 날아가는 장면도 찍었는데, 처음 산샤(三峽)에 갔을 때 건물들이 마치 2천년 전에 지어진 느낌이 들었고, 외계인이 왔다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국인들의 심리처럼 복잡한 느낌이었다.” -<24시티>에서는 시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영화를 시처럼 다루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시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내면의 복잡함을 표현하는데 유용하다. 기나긴 역사와 개인의 미묘한 감정을 다루려는 이 영화에서 시는 꼭 필요했다. 예를 들어 조안첸이 소녀에서 중년부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상처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느낌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최근 본 한국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봤다.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에 감동 받았다. 나도 중국의 전통 문화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금 한국영화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있다. 조언 한마디 해달라. “창의력 결핍을 극복하려면 더 많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제도적 제약이 문제지만, 한국은 영화인들 스스로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창의력 결핍은 한국 문화예술계의 공통적인 문제다. 그 바탕에는 암기 위주의 획일적인 입시교육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동의한다. 모든 시험에는 보수적인 요소가 들어있다. 세상에 융통성 있는 시험은 없다. -신디가 큰 영화제도 아닌데, 심사위원을 수락한 이유는? “나처럼 젊은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영화제라고 들었다. 상업영화 이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경쟁작 15편을 모두 봤는데, 참신했고 상상력이 뛰어났다. 나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다. 나도 이제 레드카펫에 질릴 만큼 질려버려서, 이 영화제의 편안함이 좋다.” -다음 영화는 무협·액션 영화가 될 것이라고 들었다. “맞다. 하지만 쿵푸영화는 아니다. 싸움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제는 현대화에 관한 것이다. 청나라 말기 중국인들이, 왜 중국이 낙후됐다고 느끼고 현대화를 이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다룰 것이다.” 글 이재성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개막작 ‘24시티’ 중국 계획경제 묘사 역사라는 큰 틀의 스크린에 인물이라는 각주로 숨을 불어넣은 영화. 중국의 젊은 거장 자장커 감독의 작품 세계를 요약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스틸 라이프>(원제:삼협호인)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그가 서울에 왔다. 디지털로 찍은 저예산 영화들의 축제인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CINDI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은 것이다. 그의 최근작이자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었던 <24시티>는 신디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지난 25일 오후, 신디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압구정씨지브이에서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스틸 라이프>에 이어 <24시티> 역시 자본주의적 개발의 이면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한편의 서사시처럼 보인다. <24시티>에서 말하려고 했던 주제는? “중국이 겪었던 계획경제 시절을 돌아보려고 했다.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자는 의미다. 반성과 숙고가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영화를 보면 당신은 자본주의적 개발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자 개인들에 대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좀 더 인도주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르바초프식으로 말하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원한다고 보면 되나?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새로운 체제가 나타난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드는데 정부의 간섭이나 방해는 없나? “내가 영화를 합법적으로 찍을 수 있게 된 것은 2003년 이후다. 정국 정부가 영화를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심의를 느슨하게 해줘 약간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 전의 작품들은 모두 심의를 받지 않은 작품들이라 중국 내에서는 상영하지 못했다. <24시티>도 올해 칸 영화제 초청 명단이 발표되기 3시간 전에야 심의 허가가 났다.” -중국 정부는 당신을 반체제 인사로 규정하고 있나?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너는 그렇게 중국의 어두운 모습을 찍으려고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오해다. 사회에 대한 하나의 예술적 이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번에 함께 한국에 온 이스라엘의 아모스 지타이 감독도 마찬가지인데, 자기 나라의 불편한 모습을 직시한 영화를 다른 나라에 보여준다면, 세계인들은 이스라엘이나 중국에 대한 혐오감 대신 존경심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정부가 걱정하는 그런 결과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문화를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일 뿐이다.” -올림픽이 끝났다. 거대한 제국의 꿈을 꾸는 중국이 자신의 힘을 세계 만방에 과시했다. 그러나 티베트 독립운동 탄압에서 보듯, 중국을 위험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있다. “올림픽 이후 중국은 굉장히 현대화되고, 대국이 됐다는 환각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현대화인지 생각해야 한다. 물질문명의 발전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중국인은 다시 한번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나친 민족주의 정서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 지원은 받은 적이 있나? “한번도 못 받았다.” -상업영화도 아닌데, 돈은 어디서 구하나? “제 영화를 선호하는 시장이 안정적이다. 유럽과 홍콩도 있고, 한국도 그렇다. 돈이 부족해서 불편함을 느껴본 적은 없다.” -카메라 움직임이나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조안 첸 등 3명의 여자는 분명히 연기를 하고 있는데,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은 모두 다큐인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겠다. “나의 초기 영화는 순수 다큐멘터리 작업이었다. 지금은 다큐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혼용하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합치면 현대 중국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소설이지만, 역사와 상상이 합쳐져 더 진실된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나는 관객들이 전문배우와 진짜 노동자를 더 확실히 구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들을 기용한 것은 그 때문이다. 진실과 허구, 상상과 현실이 섞여 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었다” -<스틸 라이프>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은 사전 정보를 입수해서 시간에 맞추어 찍은 것인가. “시간을 놓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우주선이 날아가는 장면도 찍었는데, 처음 산샤(三峽)에 갔을 때 건물들이 마치 2천년 전에 지어진 느낌이 들었고, 외계인이 왔다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국인들의 심리처럼 복잡한 느낌이었다.” -<24시티>에서는 시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영화를 시처럼 다루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시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내면의 복잡함을 표현하는데 유용하다. 기나긴 역사와 개인의 미묘한 감정을 다루려는 이 영화에서 시는 꼭 필요했다. 예를 들어 조안첸이 소녀에서 중년부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상처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느낌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최근 본 한국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봤다.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에 감동 받았다. 나도 중국의 전통 문화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금 한국영화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있다. 조언 한마디 해달라. “창의력 결핍을 극복하려면 더 많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제도적 제약이 문제지만, 한국은 영화인들 스스로 자유를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창의력 결핍은 한국 문화예술계의 공통적인 문제다. 그 바탕에는 암기 위주의 획일적인 입시교육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동의한다. 모든 시험에는 보수적인 요소가 들어있다. 세상에 융통성 있는 시험은 없다. -신디가 큰 영화제도 아닌데, 심사위원을 수락한 이유는? “나처럼 젊은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영화제라고 들었다. 상업영화 이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경쟁작 15편을 모두 봤는데, 참신했고 상상력이 뛰어났다. 나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다. 나도 이제 레드카펫에 질릴 만큼 질려버려서, 이 영화제의 편안함이 좋다.” -다음 영화는 무협·액션 영화가 될 것이라고 들었다. “맞다. 하지만 쿵푸영화는 아니다. 싸움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제는 현대화에 관한 것이다. 청나라 말기 중국인들이, 왜 중국이 낙후됐다고 느끼고 현대화를 이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다룰 것이다.” 글 이재성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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