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감독’ 이우열
‘소년 감독’ 이우열 , ‘슬리핑 뷰티’ 이한나
낡고 때묻은 것들에 대한 그리움
‘소년 감독’ 이우열
“왜, 시인들이 서시를 쓰잖아요. 저에게 이 영화는 서시와 같아요.”
이우열(37) 감독은 오는 30일 개봉하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 <소년 감독>에 대해 이렇게 운을 뗐다.
<소년 감독>은 11살 시골 소년 상구(김영찬)와 진돗개의 동반 상경기를 그린 성장 영화다. 아버지가 마을회관에 그린 벽화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상구는 아버지 유품인 8㎜ 카메라로 벽화를 찍으려 한다. 하지만 시골엔 필름이 없다. 상구는 8㎜ 필름을 구하려고 서울로 올라온다. 아버지가 배운 영화학교를 찾아보고, 이런저런 사람들도 만난다. 나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한’ 성장 영화 계열에 속하겠지만, 순백의 판타지를 지향하는 작품은 분명히 아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또다른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 아이를 던져 넣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회사 관두고 늦깎이 입문
“내게 영화는 서시와 같아”
“사람들은 쉽게 진실을 구겨서 버리죠. 옳고 그름보다 좋고 나쁨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영화의 백미라 할 마지막 장면에서, 상구는 그렁그렁 이슬 맺힌 눈으로 뒤를 돌아본다. “소년의 마지막 눈빛이 영화의 카메라라고 봤어요. 소중한 것을 간직하려는 그 눈빛이 앞으로도 제 영화를 쭉 지켜볼 겁니다.” 강원도 정선 산골 마을에서 시작한 영화는 서울에 와서도 후미진 곳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그리움의 헌사라 할 수 있을 만큼, “낡고, 때묻은, 아날로그적인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진다. 산골 마을 사진관이나 옛 동대문운동장 근처 영화학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고집은 학생들로부터 먼저 인정받았다. 올해 청소년영화제에서 고교생, 대학생으로 이뤄진 관객심사단 300명의 압도적 지지로 관객상을 받았다. 회사에 다니다 뒤늦게 영화에 뛰어든 이 감독은 영화학도 출신도, 그 흔한 시네필도 아니었다. 다만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얘기가 넘치는 이야기꾼일 뿐이다. 만화잡지 <팝툰>에 보석상을 다룬 만화 <밝은 미래>를 곧 연재할 계획이고, 소설 <뽕나무 전쟁>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거나 하면 반드시 연극 공연을 했어요. 친구가 대본을 쓰고 제가 연출했는데 아이들이 많이 웃고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바로 그 친구가 <소년 감독>의 각색 작업을 함께 한 진철수씨다. 이 감독은 지방 우체국장으로 일하는 진씨와 함께 만화 <밝은 미래>를 원작으로 한 누아르 영화를 차기작으로 준비 중이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e@hani.co.kr
막다른 골목 여성의 지독한 현실
‘슬리핑 뷰티’ 이한나
23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슬리핑 뷰티>의 시사회에 참석한 이들은 ‘이한나’라는 낯선 여성 감독의 면모에 적잖은 당혹감을 느꼈을 법하다. 올해 스물다섯. 아직 앳된 얼굴의 그가 인생 밑바닥까지 추락해 본 사람에게서나 나타날 듯한 메마르고 불편한 시선을 영화 속에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제 작품에서 김기덕 감독의 초창기 색깔이 느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여자 김기덕’이란 별명이 붙었어요.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 감독은 1990년대 후반 르네상스를 맞던 시절의 한국 영화판이 키워 낸 ‘시네마 키드’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영화 잡지 <키노>(폐간)에서 왕자웨이 감독의 특집 기사를 보고 영화에 눈을 떴다”고 했다.
마침 그때 수입된 소니사의 6㎜짜리 디지털 카메라 ‘TRV900’은 소녀의 꿈에 날개를 단 ‘마법 상자’였다.
“거짓말 아닌 얘기들로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청소년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는 ‘참교육 영상집단’이란 모임이 있었어요. 거기서 카메라도 빌리고, 시나리오 공모에 참여해 제작비도 지원받고 했죠. 2000년에 <지독한 초록>이란 13분짜리 디지털 단편을 만들면서, 여러 청소년 영화제에서 눈길을 받게 됐어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얼개의 <슬리핑 뷰티>에는 헤어날 수 없는 물리적·정신적 폭력 속에서 자포자기한 듯 보이는 세 여성이 등장한다. 첫 에피소드 ‘나의 사촌’에는 사촌과 처음 성관계를 맺고 생리를 시작한 초등학생 도연이 등장한다. 두 번째 ‘겨울잠’에서는 치매 걸린 아버지를 봉양하는 폐경기 여성 이례가 나오며, 세 번째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는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고 임신하게 된 17살 조선족 소녀 수진의 사연이 펼쳐진다. “셋 모두 사회생활 없이 갇힌 여자들이에요. 여성의 ‘성’이라는 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인 만큼, 반감을 줘선 안 된다는 ‘당위’ 아래서 보여지잖아요. 우리가 직시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직시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낯설지만 거짓말이 아닌 얘기들로 끝까지 가 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위에 탐닉하는 초딩 여자아이의 배꼽,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자위를 돕는 중년 여성의 절망, 의붓아버지에게 강간당한 뒤 수치를 씻어내는 소녀의 뒷모습이다. “매우 불편할 수 있는 얘기들이지만, 그 배경에는 궁지에 몰린 여성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글·사진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내게 영화는 서시와 같아”
“사람들은 쉽게 진실을 구겨서 버리죠. 옳고 그름보다 좋고 나쁨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영화의 백미라 할 마지막 장면에서, 상구는 그렁그렁 이슬 맺힌 눈으로 뒤를 돌아본다. “소년의 마지막 눈빛이 영화의 카메라라고 봤어요. 소중한 것을 간직하려는 그 눈빛이 앞으로도 제 영화를 쭉 지켜볼 겁니다.” 강원도 정선 산골 마을에서 시작한 영화는 서울에 와서도 후미진 곳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그리움의 헌사라 할 수 있을 만큼, “낡고, 때묻은, 아날로그적인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진다. 산골 마을 사진관이나 옛 동대문운동장 근처 영화학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고집은 학생들로부터 먼저 인정받았다. 올해 청소년영화제에서 고교생, 대학생으로 이뤄진 관객심사단 300명의 압도적 지지로 관객상을 받았다. 회사에 다니다 뒤늦게 영화에 뛰어든 이 감독은 영화학도 출신도, 그 흔한 시네필도 아니었다. 다만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얘기가 넘치는 이야기꾼일 뿐이다. 만화잡지 <팝툰>에 보석상을 다룬 만화 <밝은 미래>를 곧 연재할 계획이고, 소설 <뽕나무 전쟁>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거나 하면 반드시 연극 공연을 했어요. 친구가 대본을 쓰고 제가 연출했는데 아이들이 많이 웃고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바로 그 친구가 <소년 감독>의 각색 작업을 함께 한 진철수씨다. 이 감독은 지방 우체국장으로 일하는 진씨와 함께 만화 <밝은 미래>를 원작으로 한 누아르 영화를 차기작으로 준비 중이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e@hani.co.kr
‘슬리핑 뷰티’ 이한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그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청소년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는 ‘참교육 영상집단’이란 모임이 있었어요. 거기서 카메라도 빌리고, 시나리오 공모에 참여해 제작비도 지원받고 했죠. 2000년에 <지독한 초록>이란 13분짜리 디지털 단편을 만들면서, 여러 청소년 영화제에서 눈길을 받게 됐어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얼개의 <슬리핑 뷰티>에는 헤어날 수 없는 물리적·정신적 폭력 속에서 자포자기한 듯 보이는 세 여성이 등장한다. 첫 에피소드 ‘나의 사촌’에는 사촌과 처음 성관계를 맺고 생리를 시작한 초등학생 도연이 등장한다. 두 번째 ‘겨울잠’에서는 치매 걸린 아버지를 봉양하는 폐경기 여성 이례가 나오며, 세 번째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는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고 임신하게 된 17살 조선족 소녀 수진의 사연이 펼쳐진다. “셋 모두 사회생활 없이 갇힌 여자들이에요. 여성의 ‘성’이라는 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인 만큼, 반감을 줘선 안 된다는 ‘당위’ 아래서 보여지잖아요. 우리가 직시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직시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낯설지만 거짓말이 아닌 얘기들로 끝까지 가 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위에 탐닉하는 초딩 여자아이의 배꼽,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자위를 돕는 중년 여성의 절망, 의붓아버지에게 강간당한 뒤 수치를 씻어내는 소녀의 뒷모습이다. “매우 불편할 수 있는 얘기들이지만, 그 배경에는 궁지에 몰린 여성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글·사진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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