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여기도 낙방 저기도 탈락…어제는 야근 오늘은 밤샘…
무한동력·남기한 엘리트 만들기 등
20대 진솔하게 그린 만화 잇따라
불황의 시대를 살아가는 ‘88만원 세대’의 고민을 담은 만화들이 잇따라 선보여 화제다.
먼저 주목되는 대표작은 포털 야후에 연재 중인 1981년생 작가 주호민씨의 <무한동력>. 만화에는 평범한 20대 청년 세 명이 등장한다. 주인공 장선재는 스물일곱 살. 민국대 경영학과 4학년이다. 그는 금융회사에 취업해 고액 연봉을 받는 게 꿈이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포기할 수도, 희망을 갖기도 어중간한 ‘스펙’(출신교·학점·토익 성적 등 취업에 영향을 주는 조건들)을 가진 선재는 하반기 금융회사 공채 서류전형에서 ‘1승17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받아든다. 선재의 하숙집 옆방에는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진기한, 그 앞방에는 선재와 동갑인 네일 아티스트 김솔이 산다.
주호민 작가는 “만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주변의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20대들의 고민을 담기 위해 취업 준비생,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아르바이트생을 등장인물로 택했다.
네이버에는 1982년생 홍승표씨의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가 연재되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 연달아 낙방한 남기한은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으로 돌아간 자신을 발견한다. 연재가 8회까지 진행돼 본격적인 갈등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절망스런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20대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빛난다. 과거로 갔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무리하게 전 재산을 걸고 주식 투자를 하려는 아버지를 막으려 나름 충고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매타작’뿐이다. 기한은 결국 ‘쫄딱’ 망한 부모님과 허름한 집으로 이사가는 어려움을 겪는다.
취업 뒤에도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다. 1982년생 홍인혜 작가는 지난 9월 출간된 <사춘기 직장인>(애니북스)에서 5년차 광고사 직원 루나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린다. 만화는 ‘기억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는 작가가 프레젠테이션 준비로 밤을 새워가며 짬짬이 적어 내려간 ‘그림일기’다. 루나는 오아시스 같은 휴일을 숙취로 날리고 괴로워하거나, 거듭된 밤샘으로 몽롱해진 채 감독에게 “최종본은 웹하드 제 폴더 ‘님’에 올려주세요!”란 전화를 거는 등 실수를 연발한다.
지난 8일 출간된 일본 만화 <오타쿠 샐러리맨>(대원씨아이)도 여자 친구 하나 없는 29살 일본 신입사원의 애환을 유쾌하게 그린다.
이들 만화의 공통점이자 미덕은 자신의 생생한 경험에 뿌리 내린 디테일이다. <무한동력> 속의 선재는 “어제는 점심값 3500원 비싸다는 얘기하더니, 오늘은 연봉 3500이라고 자랑질을 하는구나”(8화)라고 혼잣말을 한다.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의 남기한은 “남.기.한. 님은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다시 들으시려면 1번, 전 단계로 돌아가시려면 우물 정자를 눌러주세요”(1화)라는 합격 조회 서비스를 들으며 좌절한다. ‘1승17패’. 마지막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던 날, 선재는 하숙집 보증금을 빼서 나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초반 러쉬(급습) 한 번 당했다고, 바로 GG(포기)치시면 안 되죠.”(52화) 선재를 향한 옆방 기한의 외침은 잇따른 실패로 어깨가 늘어진 또래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진솔한 위로로 들린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20대 진솔하게 그린 만화 잇따라
19
이들 만화의 공통점이자 미덕은 자신의 생생한 경험에 뿌리 내린 디테일이다. <무한동력> 속의 선재는 “어제는 점심값 3500원 비싸다는 얘기하더니, 오늘은 연봉 3500이라고 자랑질을 하는구나”(8화)라고 혼잣말을 한다.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의 남기한은 “남.기.한. 님은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다시 들으시려면 1번, 전 단계로 돌아가시려면 우물 정자를 눌러주세요”(1화)라는 합격 조회 서비스를 들으며 좌절한다. ‘1승17패’. 마지막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던 날, 선재는 하숙집 보증금을 빼서 나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초반 러쉬(급습) 한 번 당했다고, 바로 GG(포기)치시면 안 되죠.”(52화) 선재를 향한 옆방 기한의 외침은 잇따른 실패로 어깨가 늘어진 또래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진솔한 위로로 들린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