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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첫눈’처럼 왔다 가는, 아슬아슬한 인연이여

등록 2009-01-08 18:25수정 2009-01-08 19:16

이순원 6년만의 소설집 ‘첫눈’
‘명 어머니’의 타인 자식 위한 기도
수구신문 다룬 ‘카프카의 연인’ 등
가족의 우애·사람의 도리 예찬

중견 작가 이순원(52)씨가 6년 만에 새 작품집 <첫눈>(뿔)을 펴냈다. 표제작을 포함해 일곱 단편이 묶였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와 같은 소설로 90년대 초 ‘신세대 문학’의 대표 주자로 일컬어지던 작가도 어느덧 반백의 나이에 이르렀다. 그의 새 소설집 역시 연륜에서 우러난 지혜와 성숙한 삶의 교훈으로 치장하고 있다.

이순원씨의 소설들은 가족의 우애와 사랑에 기반한 보수적 가치를 예찬한다. 작가의 고향 강릉과 집안 어른들은 이순원 소설의 든든한 저변을 이룬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가히 설화적 분위기조차 풍기는 고향과 친척들의 이야기는 경조부박하고 냉정무비한 세태를 점잖게 꾸짖는다.

<멀리 있는 사람>이라는 단편에 나오는 ‘명 어머니’ 이야기를 보자. 명 어머니란 짧은 수명을 받고 태어난 아이가 장수할 수 있도록 명을 지켜 주는 또 하나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해남 출장길에 명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공은 밤을 새워 고향 강릉으로 향하면서 명 어머니에 얽힌 일들을 돌이켜본다. 남보다 짧은 명을 타고났다는 주인공은 아닌 게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몇 차례 위태로운 순간을 맞지만, 그때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기원한 명 어머니의 정성 덕분에 위기를 넘긴다. 소설 첫머리에서 주인공은 ‘이제 그만 일어나 집으로 가야지.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라는 환청을 듣는데, 그것이 어려서 죽은 명 어머니의 큰아들 목소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내 삶이 위태로웠던 순간마다 같은 어머니의 형제로 신호를 보내고 또 허리를 내주었던 내 명 어머니의 큰아들(…).” 그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을 구했다는 믿음은 불합리하다기보다는 아름답게 그려진다.

역시 강릉을 배경으로 한 <라인 강가에서>는 작은할아버지의 아들인 ‘선구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시절 광부로 독일에 파견되었던 선구 아저씨는 그곳에서 반유신 운동을 벌인데다 친척들에 대한 오해까지 겹쳐 고향 걸음을 딱 끊는다. 화자의 부친이 그런 선구 아저씨의 부모 묘를 합봉하는 이야기가 소설의 얼개를 이루는데, ‘아저씨, 아버지가 아저씨를 기다려요’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시대의 질곡과 사람 사이의 오해와 반목에도 불구하고 인간사의 바탕을 이루는 가족애의 가치를 한껏 고양한다.

<거미의 집>은 칠순 노모를 서로 모시지 않으려는 자식들 사이의 알력을, 새끼들에게 제 몸을 다 파먹히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거미의 생리에 빗대어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노모의 큰딸이 형제들에게 하는 말(“사람이 짐승과 다른 게 뭐가 있어? 지킬 법도 지키고 할 도리 하는 거 아니야?”)은 이순원 소설의 주제의식을 단순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가족의 소중함과 사람의 도리를 강조하는 보수는 자칫 부당한 기득권에 집착하는 수구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순원씨의 소설에서 보수와 수구는 엄연히 구분된다. <카프카의 연인>은 2002년 대선 전야를 배경으로 한 수구 신문사 논설위원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여중생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촛불 행렬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선배 논설위원은 “벌레 같은 놈들”이라 짓씹어 말하는데, 주인공은 “그들이 보면 이 건물이 바로 벌레들의 성채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의식’은 아직 지니고 있다.

표제작 <첫눈>은 1997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은비령>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된 프리랜서 피디와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젊은 여교사가 아슬아슬한 감정의 끈을 엮어 나간다. 매개는 고래. 여교사는 신혼여행 때 마라도로 가던 배 안에서 목격했던 고래의 추억을, 피디는 어린 시절 고향 강릉에서 먹었던 고래 고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같이 고래를 보러 가자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하고, 생의 한순간 잠깐 겹쳤던 두 사람의 행로는 다시 어긋난다. 그런 결론을, 늦가을 강릉 가는 길에 들어선다는 ‘첫눈조심’ 표지판과 결부시키는 상상력이 참신하다. “그래, 찍으면 발자국 자리도 안 나게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도 모르게 왔다 가는 것, 혹은 그렇게 왔다 가는 사람, 그 모든 것이 첫눈인 것이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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