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임팩 더블린 문학상 수상 ‘드 니로의 게임’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전쟁의 광기 묘사 ‘압권’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전쟁의 광기 묘사 ‘압권’
2008년 ‘임팩 더블린 문학상’은 무명의 작가 라위 하지의 소설 <드 니로의 게임>에 돌아갔다. 폴 오스터, 필립 로스, 이사벨 아옌데, 존 업다이크, 토머스 핀천, 마거릿 애트우드, 그리고 <로드>의 코맥 매카시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친 결과였다. 10만유로(약 1억8천만원)의 상금을 자랑하는 임팩 더블린 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로는 오르한 파묵, 미셸 우엘벡, 타하르 벤 젤룬 등이 있다.
라위 하지는 1964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태어났으며 성장기에 9년 동안 레바논 내전을 겪었다. 82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데 이어 9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 정착했으며, 사진작가로 출발해 프리랜서 기자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2006년에 낸 첫작품 <드 니로의 게임>(공진호 옮김, 마음산책 펴냄)은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열일곱 살 불알친구 바쌈과 조지. “1만 개의 폭탄이 떨어졌고 나는 조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첫 문장은 교향곡의 주제 선율처럼 소설 전체를 관류한다. 가령 바쌈이 연인 라나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은 “감미로운 폭탄의 폭포 아래에서 나는 그녀의 몸에 1만 번의 키스를 퍼부었다”고 서술되며, 죽음과 죽임의 광기가 지배하는 내전의 풍경은 “1만 개의 관이 땅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는데 지상의 산 자들은 저마다 손에 총기를 들고 춤을 추었다”고 묘사되고, 기독교 의용군에 체포된 바쌈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1만 번의 매질이 나의 연약한 살갗에 작렬하며 불꽃을 틔웠다”고 표현된다.
“로마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좋은 곳임에 틀림없다. 광장의 비둘기들은 행복해 보이며 잘 먹어서인지 살이 오른 듯하다.”
1만 개의 폭탄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레바논 거리에서 바쌈은 로마의 광장을 꿈꾼다. 기독교 의용군에 자원해 내전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조지와 달리 바쌈은 떨어지는 폭탄을 요리조리 피하며 탈출을 위한 돈을 모은다. 이렇듯 가고자 하는 길은 서로 달라도 둘은 형제 이상의 우애를 나눈다. 조지는 바쌈의 뺨에 입을 맞추며 “우린 친형제다, 친형제”라고 말하곤 하는데, 전쟁의 광기는 두 젊은이의 우정을 순수한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조지가 바쌈의 연인 라나를 가로채고, 기독교계 총사령관의 암살에 간접적으로 연루된 바쌈을 체포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드 니로의 게임’이란 영화 <디어 헌터>에서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벌인 러시안 룰렛 게임을 가리킨다. 내전기 레바논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드 니로의 게임을 하다가 죽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조지는 바쌈에게 바로 이 게임을 제안한다. 우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게임의 법칙이다.
<드 니로의 게임>은 아프가니스탄 출신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데뷔작 <연을 쫓는 아이>(2003)를 연상시킨다. 내전이라는 긴박한 상황에 놓인 두 청(소)년의 우정과 배신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둘 중 한쪽이 죽고 남은 한 사람이 미국 또는 프랑스로 탈출한다는 결론 등에서 그러하다.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에서 벌어진 학살을 비롯해 전쟁이 초래하는 광기와 비인간성의 묘사가 특히 압도적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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