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45)
공선옥 소설집 ‘…죽지 않겠다’
질경이 같은 청소년들 주인공
가난 속에서도 희망끈 놓지 않아
질경이 같은 청소년들 주인공
가난 속에서도 희망끈 놓지 않아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공선옥(45)씨의 단편 여섯을 묶은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가 ‘창비청소년문학’ 열다섯 번째 권으로 나왔다.
청소년 소설 바람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 <완득이>가 같은 시리즈에 들어 있지만, 사실 ‘청소년문학’이란 잠정적이고 불안정한 명칭이다. 이 장르의 소설들은 대체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독자 역시 청소년들일 것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청소년’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은 ‘일반’ 또는 ‘성인’ 소설이라고 해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쓴 소설을 청소년 독자들이 읽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공선옥씨가 이 소설집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나는 그냥 소설을 썼다”고 밝힌 것은 이 신생 장르의 태생적 불안정성을 작가 쪽에서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선옥씨의 청소년 주인공들은 그의 여느 소설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가난을 천형처럼 짊어지고 있다. 가난은 그들의 삶을 옥죄는 사슬이지만, 작가에게는 인간과 세계를 들여다보는 열쇳구멍과도 같다. 가난이라는 렌즈를 통해 볼 때 사태의 본질은 한결 분명하게 파악된다고 작가는 생각하는 듯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면 엄마가 울지 않을 수 있다. 엄마는 돈 오십만 원만 있으면 누구보다 행복한 엄마일 수 있다.”(<나는 죽지 않겠다>)
“때가 때이니만큼 나도 돈이 없다. 돈이 있더라도 돈을 쓰지 말아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돈을 썼다. 그깟 라면값 쓴 것도 돈 쓴 것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마 속으로 피울음을 울지도 모른다.”(<라면은 멋있다>)
공선옥씨의 가난한 청소년 주인공들에게 돈은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다. 그들이 특별히 돈을 밝히는 성격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돈은 그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할 수 없게 만들며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지 않겠다>의 주인공 엄마에게는 단돈 오십만 원이 행복의 조건이 된다. <라면은 멋있다>의 주인공 민수는 얼마 안 되는 라면값 때문에 피울음을 울 수도 있다고 한다. 후속작인 <힘센 봉숭아>에서 제 손으로 용돈을 벌고자 ‘알바’를 전전하던 그는 그 과정에서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학생이 돈 이만 원을 쓸 때는 친절하다. 그러나 그 학생이 이만 원을 벌 때는 그런 친절한 대우를 받기가 어렵다.”
이렇듯 경험을 지혜로 바꾸는 어린 현자 민수는 급기야 ‘돈=눈물’이라는 등식을 발견한다.
“아버진 새로운 일거릴 끝내 못 찾은 모양이다. 잡담만 해도 일하는 사람을 쫓아내는 회사에 들어간 엄마도 왠지 불안하다. 용우가 어렵게 받아낸 돈을 꺼내 본다. 돈이 돈이 아니라 왠지 자꾸만 눈물로 보인다. 저 돈 때문에 내가 울고 아줌마가 울고 엄마가 울고 아버지가 운다.”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요사스러운 돈. 그 돈 때문에 <나는 죽지 않겠다>의 주인공은 급기야 죽음까지 생각하게 된다. 급우들에게서 걷은 돈을 반장 대신 간직하고 있다가, 오십만 원 때문에 불행해진 엄마에게 ‘쾌척’한 여고생은 제 한목숨을 던져서 돈이 부리는 흑마술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에서 돈과 목숨의 무게를 놓고 저울질하던 그는 결국 목숨의 손을 들어 준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 죽냐, 죽기를”이라는 건 그 강가에서 마주친 누군가의 말이지만, 그것은 고스란히 주인공 자신의 심사를 대변하는 말이 된다.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공선옥 소설 주인공들의 건강한 아름다움이다. “나는 아름다워서 힘센 봉숭아를 닮아 넘어져도 기를 쓰고 살아나리라”(<힘센 봉숭아>) 다짐하는 민수나,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자신을 낳았던 엄마를 스스로도 어린 미혼모가 될 처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울 엄마 딸>의 승애한테서도 ‘공선옥표 낙관주의’는 공히 만져진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요사스러운 돈. 그 돈 때문에 <나는 죽지 않겠다>의 주인공은 급기야 죽음까지 생각하게 된다. 급우들에게서 걷은 돈을 반장 대신 간직하고 있다가, 오십만 원 때문에 불행해진 엄마에게 ‘쾌척’한 여고생은 제 한목숨을 던져서 돈이 부리는 흑마술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에서 돈과 목숨의 무게를 놓고 저울질하던 그는 결국 목숨의 손을 들어 준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 죽냐, 죽기를”이라는 건 그 강가에서 마주친 누군가의 말이지만, 그것은 고스란히 주인공 자신의 심사를 대변하는 말이 된다.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공선옥 소설 주인공들의 건강한 아름다움이다. “나는 아름다워서 힘센 봉숭아를 닮아 넘어져도 기를 쓰고 살아나리라”(<힘센 봉숭아>) 다짐하는 민수나,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자신을 낳았던 엄마를 스스로도 어린 미혼모가 될 처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울 엄마 딸>의 승애한테서도 ‘공선옥표 낙관주의’는 공히 만져진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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