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겸 소설가 이상(1910~37)
소설가 구보 결혼식 방명록서 친필 축하글 발견
시인 겸 소설가 이상(1910~37)이 절친한 친구였던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86)의 결혼식 방명록에 남긴 친필 축하글이 확인됐다.
구보의 차남 박재영(67)씨는 다음달 15일 서울 청계천문화관에서 개막하는 구보의 유물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를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재영씨는 “문인 등 20여명의 축하 메시지가 담긴 방명록에 정작 단짝 친구였던 이상의 글이 없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고서 전문가 김영복씨에게 필적 감정을 의뢰한 결과 첫 장에 ‘이상’(以上)이라고 서명한 글이 이상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상’ 명의의 방명록 메시지는 “結婚(결혼)은 卽(즉) 慢畵(만화)에 틀님업고/ 慢畵의 實演(실연)에 틀님업다/ 慢畵實演의 眞摯味(진지미)는/ 또다시 慢畵로-輪廻(윤회)한다”로 되어 있다. 첫머리에는 ‘面會拒絶 反對’(면회거절 반대)라는 ‘애교 섞인’ 주문을 적고, 끝에는 1934년 10월 27일이라는 날짜와 이상의 ‘箱’(상) 자가 적혀 있다.
특이한 것은 ‘만화’에 원래 쓰이는 ‘흩어지다’는 뜻의 ‘漫’ 자 대신 ‘게으르다’는 뜻의 ‘慢’ 자가 쓰인 것이다. 연구자들은 ‘조감도’를 ‘오감도’로 바꿔 쓰는 등의 말장난에 능했던 이상다운 장난이라고 파악했다. 즉 만화가 가진 허황된 것이라는 이미지에 ‘느슨하고 일상적인 그림’이라는 의미를 더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보의 장남 박일영(재미)씨가 보관해온 이 방명록에는 이상 말고도 시인 정지용, 소설가 이태준, 시인 겸 소설가 조벽암, 삽화가 이승만 등 당대 유명 문인과 예술인들의 축하 글과 그림이 담겨 있다.
구보의 결혼 방명록은 24일 오전 11시에 방송되는 <한국방송> 제1텔레비전 ‘TV쇼 진품명품’에서 먼저 공개된다.
한편, 다음달 15일부터 7월5일까지 이어지는 구보 유물 전시회에는 방명록과 함께 안경, 재떨이, 서랍장(원고지 보관함), 책장 등 구보의 유물과 1930~40년대에 나왔던 구보 작품 등 사진자료도 전시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천재시인 이상이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결혼식 방명록에 친필로 남긴 축하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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