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에 참가하는 여성 소설가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루이사 발렌수엘라, 신디웨 마고나, 사하르 칼리파, 박완서.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 제공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 심포지엄’
남아공·필리핀·팔레스타인 소설가들 참여
‘서구적 고정관념’ 깨고 창작 배경 직접 소통
남아공·필리핀·팔레스타인 소설가들 참여
‘서구적 고정관념’ 깨고 창작 배경 직접 소통
“지금 유럽은 정치·경제적으로는 앞서 있지만 문학적으로는 고갈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제3세계에서야말로 세계문학의 새로운 소생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문학통사>로 잘 알려진 국문학자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2002년에 <세계문학사의 전개>를 내면서 한 말이다. 1996년의 <세계문학사의 허실>에서부터 시작해 10여권에 이르는 세계문학사 관련 저술을 마무리하면서 내린 그 나름의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세계문학의 지형도가 여전히 유럽 및 서구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의 노벨문학상 발표에서도 새삼 확인된 바 있다. 유럽 중심의 왜곡된 세계문학 지형도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인들이 한데 모이는 행사가 열린다. 오는 29~30일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 심포지엄’이 그것이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집행위원장 김재용 원광대 교수)과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 공동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첫날 오후 1~6시 ‘비서구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심포지엄과 이튿날 오전 10시~오후 1시 ‘세계화와 문학’을 주제로 진행되는 토론회로 꾸며진다. 이 행사를 위해 팔레스타인 소설가 사하르 칼리파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가 신디웨 마고나, 아르헨티나 소설가 루이사 발렌수엘라, 그리고 필리핀 소설가 아센조 제네이아브 람파사가 초청되었다. 국내 문인 중에서도 소설가 박완서씨와 이경자씨, 그리고 시인 도종환씨가 첫날 심포지엄에 참가하며, 소설가 천운영·손홍규씨와 시인 신용목씨, 그리고 문학평론가 정은경(원광대·사회)·이경재(아주대) 교수가 둘쨋날 토론회에 참여한다. 박완서씨는 ‘내가 믿는 이야기의 힘’이라는 발표에서 열 살 위인 오빠가 전쟁통에 좌와 우의 틈바구니에 끼여 희생당한 일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문학의 바탕에는 그때 일에 대한 ‘증언’과 ‘복수’의 욕구가 자리잡고 있었노라고 밝힌다. 사하르 칼리파는 ‘당신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여성이자 팔레스타인인이며 아랍인이고 이슬람교도인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오해를 해명한다. 그는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과 이슬람교도를 후진적이며 원리주의적인 테러리스트라는 이미지에 가둬 놓는 서구 미디어의 고정관념을 비판하면서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이자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만이 우리로 하여금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신디웨 마고나는 ‘경계를 넘어서’라는 발표문을 통해 자신의 소설들이 “남아공 여성들이 처한 불명예, 수치, 고통, 공포, 위험”을 주로 다루고 있다면서 “남아프리카에서 여성은 여전히 독립을 기다린다”고 주장했다. 루이사 발렌수엘라는 ‘반역하는 말’이라는 발표에서 “말해지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것의 주름 사이에 여성의 언어가 숨어 있다”며 “여성 언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담고 있는 자신의 최근 소설 <마냐나 호>에 대해 소개했다. 이번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이는 김재용 교수와 우석균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그리고 이석호 아프리카문화연구소장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이번 행사를 예행 연습 삼아 내년 봄부터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 행사를 해마다 열 계획이다. 김재용 교수는 “지금 세계 문학의 중심은 확실히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같은 제3세계로 옮겨 오고 있는데, 유럽은 여전히 관리자로서 그 위에 군림하고 있다”며 “이번 행사는 유럽 중심주의적인 세계 문학 지형을 진정한 지구적 차원의 세계 문학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서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통해 왔지만 이제는 직접 소통을 넘어 연대까지 모색할 때”라며 “진정한 의미의 비서구가 다 포괄되는 행사를 통해 실질적인 네트워크를 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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