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기자
문화는 정치의 종속변수인가? 문화부 기자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게 요즘 세태다. 방송계의 김제동이나 윤도현 퇴출 같은 직접적인 경우만이 아니다. 영화계에서는 더 은밀한 방식으로 ‘코드 맞추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코드가 맞는 작품은 중복 제작될 정도로 인기 아이템이 됐다. 2차 서해교전(일명 연평해전)을 영화화하겠다는 제작사가 2곳이나 나선 것이다. 영화 <친구>로 유명한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는 <아름다운 우리>(가제)와 영화 <튜브>의 백운학 감독이 연출하는 <연평해전>이다. <연평해전>의 후원단체인 방송개혁시민연대는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유효 판결 환영’ 성명을 냈으며, 문화방송을 집중 공격하고 있는 뉴라이트단체다.
반면 이명박 정부가 불편해하는 영화들은 제작이 중단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류승범과 김아중이 주연할 예정이었던 영화 <29년>에 대한 투자가 중단된 이유가, 5·18 광주민중항쟁 책임자에 대한 암살 기도라는 ‘위험한’ 설정 때문이라는 건 영화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부 우파 영화계 인사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좌파 딱지를 붙인 데 이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2일 영화진흥위원회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제영화제들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인권영화제와 서울환경영화제에 대한 정부 지원은 돌연 중단됐지만, 한나라당 출신 인사가 주도하거나 후원하는 영화제는 잇따라 생기고 있다. 김덕룡 청와대 국민통합특별보좌관이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서울국제사회복지영화제가 대표적이다.
냉전시대의 유물을 반성하는 내용의 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한 감독은 “그런 내용을 이 정권에서 어떻게 만들려고 하느냐며 주변에서 다들 말린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영화감독들은 정부의 허가를 받고 영화를 기획해야 하나. 영화를 정치에 종속시키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영화는 영화다.’
이재성 기자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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