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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토끼인간, 만물의 영장에 토를 달다

등록 2010-01-21 18:35수정 2010-01-21 19:15

작가 김남일(53)씨
작가 김남일(53)씨
김남일 15년만의 소설 ‘천재토끼 차상문’
인간중심주의 문명에 일침
‘우편물 폭탄’ 유나바머에서 영감




참으로 오랜만이다.

참여와 실천의 작가 김남일(53)씨가 <청년일기>(1987)와 <국경>(1993~1996) 이후 무려 15년 만에 세 번째 장편소설 <천재토끼 차상문>(문학동네)을 내놓았다.

<천재토끼 차상문>은 아이큐 200의 한국인 천재 수학자 차상문의 일대기다. 미국 버클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최연소 교수 자격을 획득한 그였으나 어떤 개인적 체험이 계기가 되어 버클리 교수직을 박차고 나왔으며, 귀국해서 서울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격동의 80년대에 그마저도 내팽개치고 은둔의 삶을 택한다. 그가 어느 날 교육인적자원부와 인터넷 포털 업체, 실험동물 공급업체, 건설사, 기숙 학원, 룸살롱 등에 우편 폭탄을 배달한다.

어쩐지 익숙한 이야기다 싶을 것이다. 그렇다. 미국 몬태나 숲에 숨어 살다가 홀로 산업 문명 전체를 상대로 한 ‘전쟁’을 선포하고 18년 동안 우편물 폭탄으로 세 명을 살해하고 23명을 부상시킨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일명 유나바머가 차상문의 역할 모델이다. 소설 속에서 버클리대 교수 차상문은 몬태나 숲에 가서 은둔자 ‘쿠나바머’를 만나 그로부터 교화를 받는다. 앞서 언급한 ‘개인적 체험’이란 바로 그 일을 가리킨다.

차상문은 이념 대립과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1950년대 중후반, 대공 수사관 차준수가 좌익 지식인 유진명의 누이 유진숙을 강제로 범해서 낳은 아들이다. 두 귀와 다리가 유난히 긴 ‘토끼 인간’ 차상문은 튀는 용모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타고난 두뇌 덕분에 버클리대 유학의 기회를 잡게 된다.


<천재토끼 차상문>
<천재토끼 차상문>
유진숙을 아예 첩으로 삼고 그 사이에서 둘째 상무까지 본 부친 차준수는 유진숙을 상습적으로 구타하는가 하면, 수사관직을 그만두고 외항선 선장이 되어서도 선원들에게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살해당한다.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세상의 모든 악은 고환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을 지니게 된 차상문은 힘없고 죄 없는 생명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분재 화분에 갇힌 소나무, 형무소 같은 계사에서 대량으로 사육되는 닭,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차례로 도살되는 오리 등에 대한 연민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직후인 87년 6월항쟁 당시 그는 뜻 맞는 이들과 함께 ‘민주주의 너머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영장류 연대’를 결성해 깃발을 휘두르고 유인물을 뿌린다. 멸종 위기에 놓인 동식물들, 그리고 영어의 지배 아래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소수 언어들이 그 조직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인간이… 과연 진화의 종착지일까요?”라는 회의적 질문을 남기고 종적을 감춘다. 우편물 폭탄 배달은 그 뒤의 일이거니와, 그사이에 그는 개, 닭, 소, 말 같은 짐승들을 데리고 어느 건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그때 배포한 유인물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제발, 무엇이든 하려고 좀 하지 마시라! 무엇을 하든 지구별은 그만큼 무너지게 마련이다.(…)당신들의 건강이 곧 무수한 존재의 무덤이다.”

인간의 행위와 존재 자체에 대한 이런 도저한 회의는 인간 종의 소멸이 지구 생태계에 이롭다는 ‘생태 파시즘’의 혐의를 풍기기도 한다. “쿵쿵거리지 좀 말아주세요, 제발!(…)땅이 놀라잖아요”라며 등산객들에게 호소하던 차상문이 밀폐된 무문관 토굴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하는 결말은 그런 혐의를 더욱 짙게 한다.

<천재토끼 차상문>은 그게 그것 같은 이즈음의 소설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낯설고 개성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한국판 마술적 사실주의라 할 법한 면모를 보이는가 하면 중국 소설의 다변과 요설을 떠오르게도 한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뒤틀린 한국 현대사를 색다르게 변주한데다 민족과 인간 종을 넘어서는 인류 문명과 생태 및 환경의 문제까지 시야를 넓힌 점도 돋보인다. 그러나 스스로 허무주의와 근본주의에 빠졌노라는 작가의 고백에서 짐작되듯, 실현 가능한 대안의 제시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듯해 아쉬움을 남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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