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15시간 미친듯 몰두 그래도 번역은 행복한 일”
일본 굴지의 출판사인 고단샤가 주관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의 제15회 수상자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일식>을 번역한 양윤옥(48)씨가 선정되어 7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상을 받았다.
노마문예번역상은 1989년 고단샤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창업자인 노마 세이지의 이름을 따서 제정되었다. 매년 일본의 문예작품을 외국어로 번역 출간한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과에 대해 상을 주고 있다.
히라노 소설 ‘일식’ 옮겨
1990년 이후 영어·불어·독어·스페인어·스칸디나비아어 등 유럽어권이 상을 독식해 왔으며, 아시아어권은 2002년 <나가이 가후 선집>을 번역한 중국의 천웨이에 이어 양씨가 두 번째다. 해마다 대상 언어를 한정해 수상작을 선정하는 방식 때문에 이번 15회의 심사 대상은 1990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출간된 일본 현대문학 작품의 한국어 번역본을 총망라했다. 그런 점에서, 일본문학 번역자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었던 양씨의 이번 수상은 더욱 화제를 낳았다.
“제게는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운이 따랐던 것 같기도 하구요. 다른 훌륭한 번역자들을 대신해서 이 상을 받은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일식>은 일본 작가가 중세 프랑스를 무대로 쓴 소설인 데다 장중한 의고체 문장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번역하기에 쉽지는 않았어요. <일식>을 번역하던 1998~9년 무렵에는 일본에 살고 있었는데, 번역에 필요한 참고서적 등을 보느라 집 근처의 대학 도서관을 들락거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심사위원들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원문을 유려한 한국어로 옮긴 양씨의 ‘비범한 역량’에 대한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윤상인 한양대 교수는 “수상작 <일식>은 100편이 넘는 본심 후보작 가운데 군계일학이었다”며 “원전 텍스트가 난삽하기 그지없는 일본어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수상작이 이룬 성취는 더욱 돋보였다”고 평했다. 가와무라 미나토 일본 호세이대 교수도 “대단히 섬세히 한 자 한 구가 소중히 번역되었으며, 전체적으로도 원작이 갖는 고전적인 문체의 분위기가 재현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하던 양씨는 남편의 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뒤 1992년 무렵부터 번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번역자로서 명성을 굳힌 것은 역시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통해서였다. 그 뒤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마루야마 겐지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 쓰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 등을 잇달아 펴내며 지금은 ‘1급’ 번역자로 굳게 자리잡았다.
“본심 100여편중 군계일학“
“작년 한 해 10권 정도를 번역했는데, 수입이 3200만원 정도 되더군요.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미친 듯이 일을 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번역은 행복한 일이에요. 작가들을 존경하고 받들면서 번역으로 뒷받침하는 제 역할에 만족합니다.”
원문에 충실하게 직역하는 게 우선이냐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옮기는 게 우선이냐는 질문에 양씨는 “당연히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어감을 앞세워야 한다. 대신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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