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신예 작가 헬레네 헤게만이 지난달 19일 자신의 열여덟 번째 생일 잔치에서 표절 논란에 휩싸인 소설 <아홀로틀 도마뱀 로드킬>을 낭독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독일 베스트셀러 표절 논란
헤게만, 다른 작가 글 여러군데 베껴
논란 일자 ‘표절은 하나의 기법’ 주장
“인터넷 시대의 새 문학형태” 시각도
헤게만, 다른 작가 글 여러군데 베껴
논란 일자 ‘표절은 하나의 기법’ 주장
“인터넷 시대의 새 문학형태” 시각도
독일 문단이 열일곱 살짜리 소녀 작가의 데뷔작을 둘러싼 표절 논란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헬레네 헤게만이라는 1992년생 작가의 소설 <아홀로틀 도마뱀 로드킬>(Axolotl Roadkill).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열여섯 살짜리 소녀가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의 일환으로 섹스와 마약에 탐닉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1월 말 출간 이후 한 달여 만에 1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소설은 또 이달 18~21일 열리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의 소설 부문 상(상금 2만달러) 최종 후보로 올라 있다.
그러나 한 블로거가 헤게만의 소설이 ‘아이렌’이라는 필명을 쓰는 다른 작가의 소설 <슈트로보>와 그의 블로그 글에서 여러 군데를 베껴 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표절은 단어와 구절 차원만이 아니라 때로는 한 페이지 전체를 가져다 쓰는 식으로 매우 과감하게 이루어졌다. 문제가 불거지자 헤게만은 자신의 행위를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는 문학 용어로 정당화했다. 그는 “많은 예술가들이 이 기법을 사용한다”며 “다른 작가의 텍스트 일부를 내 작품에 유기적으로 포함시킴으로써 나는 그 작가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 발표문을 통해 “독창적인 것이란 없다. 있다면 진정성뿐”이라는 말로 자신의 소설을 옹호했다.
헤게만의 표절과 사후 대응은 90년대 초 한국 문단을 들썩이게 했던 이인화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의 표절 논란을 떠오르게 한다. 이인화의 소설이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 등 국내외 작가들의 소설 곳곳에서 문장 또는 문단을 통째로 가져다 쓴 사실을 평론가 고 이성욱이 지적하자 이인화는 그것이 ‘혼성모방’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법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문제가 수그러들지 않자 헤게만과 출판사 울슈타인은 이 책의 4쇄부터는 아이렌은 물론 미국 소설가 케이시 애커와 영화감독 짐 자무시 등 소설에 인용된 글의 원저자들 명단을 밝히기로 했다. 헤게만은 “처음부터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불찰”이라면서도 표절 논란이 계속 이어지는 데 대해서는 “도대체 왜 이 난리들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표절’을 바라보는 헤게만의 태도는 소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에드몬트라는 작중 인물은 “여기 베를린은 모든 게 서로 뒤섞이는 곳”이라며 “나는 내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는 거라면 뭐든지 가져다 써.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그림이든 소시지에 관한 시든 사진이든 대화든 꿈이든 뭐든…”이라고 말한다. “그럼 그게 네 게 아니란 말야?”라는 친구의 질문에 그는 “그래. 어떤 블로거의 거야”라고 답한다. 헤게만이 블로거 아이렌의 글을 가져다 쓴 정황을 담은 셈이다. 사실은 “여기 베를린은 모든 게 서로 뒤섞이는 곳”이라는 문장 역시 아이렌의 블로그에서 가져 온 것이다.
이 소설이 다음주에 열리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주요한 문학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표절 논란을 문학적 논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도서전 문학상의 한 심사위원은 “예심 심사 전에 이미 표절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로 표절 논란이 심사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표절’을 하나의 기법이라 주장한 헤게만의 논지를 받아들인 셈이다. 실제로 문단 안팎에서는 헤게만의 소설을 새로운 세대의 출현에 대한 증거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에 온갖 정보와 텍스트가 널려 있는 시대에 전통적인 의미의 저작권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클럽 디제이에 견주는 헤게만의 ‘문학적 리믹스’는 창작과 표절의 경계를 다시 묻게 만든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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