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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개성특구를 문화 해방구로 만들자”

등록 2005-06-10 18:31수정 2005-06-10 18:31


△ (사진설명) 남과 북의 서로 다른 문화를 융합해 대안 사회의 자양분을 찾으려는 게 <문화/과학>의 시도다. 사진 왼쪽은 연세대 재즈댄스 동아리 학생들의 공연 모습, 오른쪽은 평양의 젊은이들이 함께 춤을 추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계간 ‘문화/과학’ 여름호 남북 분단 뒤 처음으로
두 체제와 사람이 만난 개성특구 통해
남한식 자본주의 아닌, 북한식 사회주의도 아닌,
통일 뒤 대한사회의 모습
“문화적 실험하자” 제안

“개성을 ‘해방구’로 만들자.” 계간 <문화/과학> 여름호의 제안이다.

도발적인 이 제안에는 5주년을 맞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새로운 지평으로 옮겨보려는 야심이 담겨 있다.

여름호 특집글의 제목이 ‘문화사회로 나아가는 통일을 상상하자’이다. 편집위원회 전체 이름으로 글을 실은 것부터 이례적이다. 심광현 편집위원은 “지난 92년 <문화/과학> 창간 이후 민족·통일·한반도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통일 구상은 “남과 북의 차이가 겹치고 꼬이는 지점을 만들어 ‘차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 핵심 공간이 개성 특구다. 개성 특구는 역사상 최초로 남과 북의 체제와 인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문화/과학> 편집진은 여기서 남한식 자본주의와 북한식 사회주의를 넘어설 ‘대안사회’의 단초를 발견했다.

이들이 보기에 남과 북은 지금까지 “경제적 영역 또는 국가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개성 특구를 다뤘다. 그 결과 “개성특구는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착취의 북한지부”가 됐다. 이는 통일 이후 한반도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재편될 것을 예고하는 징후다.


민족문제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신좌파’인 <문화/과학> 편집진이 이런 제안을 내놓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들은 “개성을 2천만평의 거대한 공장지대가 아니라 남과 북이 어우러져 남과 북 어디에도 없는 문화-경제 공동체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는 “남한의 생산력과 북한의 생태를 절합한 새로운 발전모델의 실험 공간”이자 “노동·임금·제품 중심의 노동사회가 아니라 노동·놀이, 경제·생태가 어우러진 생태적 문화 사회”이기도 하다.

심광현 편집위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개성 특구의 미래를 이렇게 묘사했다. “지금은 허허벌판에 공장과 숙소만 있잖아요.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문화적인 도시 시설을 골고루 갖추고, 주 5일 근무제와 같은 친노동 시스템을 도입하며, 그 안에서 남과 북의 기업가, 노동자가 공동으로 놀이와 축제 등을 통한 문화적 실험을 해나가는 공간으로 재구성하자는 거죠.”

그러나 남한의 기업논리와 북한의 정치논리가 창조한 개성특구를 ‘누가’ 재구성할 수 있을까? 심 위원은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통일 문제를 바라보자는 제안을 내놓는 단계이므로 그 대목이 아직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면서도 “결국은 남한의 시민사회가 이런 제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면서, 북한 체제의 유연한 부분을 찾아 인민들간의 삶의 교류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성 특구가 남과 북의 인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삶의 양식을 창출하는 문화 공간으로 재구성된다면, 이 지역은 진정한 ‘해방구’로 불리워질 수 있다. 남북한 전체를 재조직할 ‘틈’이기 때문이다.

이 틈은 “기존의 공간을 열고 벌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변형시킨다.” 이를 통해 남북의 이질적 문화와 생산체제를 융합시킨 개성 특구의 경험을 신의주·원산·함흥 등 북한의 다른 지역은 물론 남한까지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여기에는 배제와 차별을 낳는 통합이 아니라, ‘차이’ 그 자체를 진보의 에너지로 삼으려는 <문화/과학> 편집진 특유의 인식론이 깔려 있다. 이들의 제안은 아직은 ‘발칙한 상상’이다. 따지고 보면,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마주 잡은 5년전의 역사적 순간도 누군가의 작은 상상에서 시작된 일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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