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기자
이효리씨, 지난 4월 인터뷰 때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4집 음반 <에이치-로직>에 대해 상당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나타냈죠. 걸그룹이 넘쳐나는 요즘 아이돌 출신 맏언니로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수록곡에 대한 표절 의혹이 일었고, 끝내 당신은 지난 20일 여섯 곡에 대한 표절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죠.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많습니다. 지금 인터넷에선 “이효리도 피해자”라는 동정론마저 퍼지고 있습니다. 이해는 갑니다. 해당 곡을 만들었다는 신인 작곡가 바누스에게 당신도 속은 꼴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면죄부가 될 순 없습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어디까지나 당신에게 있으니까요. 이런 식의 표절 사태가 났을 때 “작곡가 잘못이지 가수 잘못은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오곤 하는데, 어불성설임은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음반은 가수의 작품입니다. 작곡가, 프로듀서, 세션 연주자 등의 도움을 받아도 주인공은 가수입니다.
물론 요즘 가요계에선 가수를 ‘얼굴 마담’이나 ‘팬시 상품’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도 사실입니다. 기획사는 히트곡 제조기라 불리는 몇몇 작곡가에게 몰리고, 작곡가들은 마치 공장이라도 되는 양 최신 흐름의 엇비슷한 음악을 대량으로 찍어냅니다. 어떤 기획사는 “외국의 ○○○ 노래 분위기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하죠. 표절 논란이 일든 말든 방송활동 ‘반짝’하며 한몫 잡고 나서 빠지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한동안 잠잠히 지내다가 다시 나오면 대중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환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까요.
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표절 판정이 나면 대개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적용돼 해당 곡으로 벌어들인 수익까지 모조리 뱉어내야 합니다. 표절 한번 잘못 했다간 패가망신하기 딱 좋죠. 앞에서는 표절이 아니라 주장하고 뒤에서는 은근슬쩍 원저작권자에게 일부 수익을 나눠주며 합의하는 관행이 널리 퍼진 가요계에 반드시 필요한 극약처방이 아닐까요?
이효리씨가 이번 일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표절에 무감각해질 대로 무감각해진 가요계에 경종을 울리고 표절에 대한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당신은 “원작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 낙담만 하기보다는 행동에 나서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 꼭 지키리라 믿습니다.
하나 더 감히 조언합니다. 다시 음반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려면 연예인보다 예술가로서의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머리 스타일, 화장, 의상으로 어떤 춤을 보여줄지보다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에 모든 걸 걸었으면 합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면, 음악을 정말 잘 아는 실력 있고 믿을 만한 프로듀서를 만나면 됩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재야에 숨은 고수들이 많습니다. 뻔하지 않고 획기적인 음악으로 돌아올 자신이 없다면 가수의 길은 접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다음번엔 음악적 성취를 높이 평가하는 글로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다음번엔 음악적 성취를 높이 평가하는 글로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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