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산타나
[리뷰] 산타나 내한공연
1969년 미국 뉴욕주 베설 평원에서 사흘간 펼쳐진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반전·평화·인권·사랑의 메시지를 음악과 함께 향유하는 한판 놀이터였다. 당시 미국은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베트남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와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흑인폭동 등으로 인종 갈등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무려 50만명이 몰려든 가운데 무명에 가까운 기타리스트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뜨겁고 격정적인 연주로 젊은이들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스무살을 갓 넘긴 기타리스트는 이후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성장해 나갔고, ‘라틴 록의 거장’ 반열에 올랐다. 그가 바로 카를로스 산타나(64)다. 산타나는 최근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그때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모였고 세계는 놀랐죠. 젊은 사람들이 숨막히는 종교와 정치적 싸움 속에서 어떤 변화를 원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걸 원하고 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9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한 산타나는 유독 평화와 사랑을 강조했다. ‘블랙 매직 우먼’, ‘오예 코모 바’, ‘징고’ 등 1960~70년대 대표곡과 ‘마리아 마리아’, ‘스무드’ 등 1990년대 후반 히트곡을 연주하며 관객들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던 그는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 조곤조곤 얘기하기 시작했다.
“마더 테레사 같은 분들만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들 하나하나가 대단히 중요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죠. 세상 곳곳의 많은 이들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빛과 사랑의 힘으로 기적과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해답입니다.”
산타나는 이날 공연에서 라틴 록의 대부답게 리듬을 특히 강조했다. 드럼, 퍼커션, 콩가 등 세 세트나 되는 타악기들이 쉴 새 없이 토해내는 울림은 록·라틴·아프리카 리듬을 넘나들었다. 산타나의 부인이자 걸출한 여성 드러머 신디 블랙먼은 공연 중간 잠시 등장해 7분여에 이르는 드럼 솔로를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산타나는 연주를 마친 아내를 꼭 안아주며 입맞춤했다.
앙코르 무대에서 그는 40여년 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킨 곡 ‘솔 새크리파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무대 뒤 대형 화면에는 당시 무대에 오른 산타나, 지미 헨드릭스 등의 모습이 비쳤다. 2011년에도 냉전의 갈등과 아픔이 여전히 진행형인 이곳 한반도에서 그는, 40여년 전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음악으로 평화와 사랑을 설파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액세스이엔티 제공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액세스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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