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간 쌓아올린 ‘현대시의 큰 축’ 301호는 오규원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내고 있는 시집 시리즈 ‘문학과지성 시인선’(‘시인선’)이 300권째를 돌파했다. 1977년 황동규씨의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내면서 출범한 지 28년 만의 일이다. 문학과지성사는 ‘시인선’의 300권째로 201호~299호까지의 시집에서 사랑시 한 편씩을 골라 실은 시선집 <쨍한 사랑 노래>를 펴내 300호 달성을 자축했다. 아울러 오규원씨의 신작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를 301호로 내놓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표지 디자인은 기왕의 큰 틀을 유지한 채 바탕색을 200번대의 초록색에서 초콜릿색으로 바꾸었다. 그동안 ‘시인선’의 표지 바탕색은 황토색(1호~99호)에서부터 청색(100호~199호)으로, 그리고 다시 초록색으로 바뀌어 왔다. 문학에, 더구나 시에 결코 우호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었던 시대를 헤쳐 오면서 ‘시인선’은 한국 현대시의 핵심적인 한 축을 감당해 왔다. 경쟁적 동반자 관계라 할 창작과비평사에서 내는 ‘창비시선’이 한국 시의 사실주의적·참여적 흐름을 주도했다면, ‘시인선’은 그 모더니즘적·지성적 갈래를 대표했다 할 만하다. ‘시인선’은 그간 매 백 번째의 시집을 그 이전 1~99번까지의 시집에서 각 한 편씩을 뽑아 시선집을 엮어 온 전통을 지니고 있다. 1990년 12월에 100권째 기념 시선집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김주연 엮음)를 냈으며, 1997년 6월에는 200권째 시선집 <시야, 너 아니냐?>(성민엽·정과리 엮음)를 낸 바 있다. 이번 300호 기념 시선집 <쨍한 사랑 노래>는 평론가 박혜경씨와 이광호씨가 편집했다. 100권째가 이른바 ‘문지 1세대’ 평론가를 엮은이로 내세우고 200권째가 ‘문지 2세대’ 평론가의 손을 빌린 데 이어 ‘문지 3세대’가 300권째를 갈무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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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마음 없이 살고 싶다./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마음 비우고가 아니라/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로 기어올랐다가/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그 흘러내린 자리를/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쨍한 사랑 노래> 전문) ‘시인선’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성복)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한 꽃송이>(정현종) <이 시대의 사랑>(최승자)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유하) <입 속의 검은 잎>(기형도) 등 숱한 스테디셀러를 거느리고 있다. 권위의 김수영문학상을 1982년~85년, 1992년~97년, 2002년~2004년 연속 수상한 것을 비롯해 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시인선’이 300호를 돌파한 데 이어 ‘창비시선’이 최근 249권째를 내며 뒤를 쫓고 있고, 실천문학사와 세계사, 민음사가 각기 100권대의 시집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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