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빔 벤더스가 포착한 ‘영원같은 한순간’

등록 2011-09-01 20:06

사진에세이집 ‘한번은’
사진에세이집 ‘한번은’
사진에세이집 ‘한번은’
로드무비 찍듯 세계 다니며
“장소와 사물의 이야기” 담아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등의 예술영화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독일 거장 빔 벤더스의 사진에세이집 <한번은>(도서출판 이봄, 1만7천원)이 나왔다.

촬영현장 스틸 컷을 직접 찍거나 촬영을 위한 장소 헌팅을 하면서 영화감독이 사진을 찍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출발점에서 사진과 영화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그런 차원을 넘어선 진짜 사진가다. 빔 벤더스의 <한번은>에 실린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잘라서 인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영화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말처럼 “모든 사진은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진에세이집이라곤 하지만 사진의 비중이 훨씬 높다. 낱개의 사진보다는 시리즈 사진이 더 많다. 그래서 사진 사이사이에 적힌 글을 중얼거리며 이 책 속 사진들을 음미하면 내레이션이 있는 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진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초반부에서 천사 다미엘은 실제 몸으로 부대끼지 않기 때문에 ‘아픔이 뭔지도 모르는’ 천사생활의 변화 없는 지겨움을 불평한다. 영원히 살 수밖에 없는 천사보다 매 순간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다. <한번은>에서 사진가 빔 벤더스는 로드무비를 찍듯 세계의 대륙을 훠이훠이 쏘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순서도 없고 맥락도 없다. 이것은 인간이 된 천사의 시선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 후반부에서 천사 다미엘은 가짜 천사 날개를 단 공중곡예사 마리온을 사랑하게 되어 천사 직분을 버리고 인간이 된다. 인간이 된 첫날을 보낸 뒤 다미엘은 말한다. “딱 한번이었는데도 영원처럼 느껴진다.” 사진의 속성처럼 들리는 말이다. 한번 셔터를 눌렀을 뿐인데 그 사진은 영원하고 유일하다.

빔 벤더스 사진집 <한번은>에 실린 오리와 집이 보이는 풍경(116쪽). ⓒ빔 벤더스
빔 벤더스 사진집 <한번은>에 실린 오리와 집이 보이는 풍경(116쪽). ⓒ빔 벤더스
<한번은>에서 빔 벤더스가 말하는 ‘한번은’이라는 단어는 딱 한번 마주친 장소이며 딱 한번만 존재하는 사진 속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장소와 그 장소에 존재했던 사물들의 외침과 이야기”를 찍는다고 말한다. 영화를 찍듯 사진을 찍은 덕분이다.

빔 벤더스의 사진에세이집을 보고 나면 그의 사진 전시에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게 된다. 사실 그는 1985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첫 사진전을 연 뒤 미국과 유럽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해왔다. 하지만 아직 한국 전시는 예정된 것이 없다. 대신 이 가을 부산영화제에서 빔 벤더스의 최신작 <피나>가 상영된다고 하니 위안이 될 법하다. 2011년 베를린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던 <피나>는 흔하지 않은 3차원(3D)예술영화다. 올해 2월 독일에서 개봉된 예술영화임에도 6개월 이상 상영된 거장의 걸작이다. 영화는 정지사진의 연속이니 사진을 감상하듯 영화를 보면 좋겠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