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세이집 ‘한번은’
사진에세이집 ‘한번은’
로드무비 찍듯 세계 다니며
“장소와 사물의 이야기” 담아
로드무비 찍듯 세계 다니며
“장소와 사물의 이야기” 담아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등의 예술영화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독일 거장 빔 벤더스의 사진에세이집 <한번은>(도서출판 이봄, 1만7천원)이 나왔다.
촬영현장 스틸 컷을 직접 찍거나 촬영을 위한 장소 헌팅을 하면서 영화감독이 사진을 찍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출발점에서 사진과 영화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그런 차원을 넘어선 진짜 사진가다. 빔 벤더스의 <한번은>에 실린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잘라서 인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영화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말처럼 “모든 사진은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진에세이집이라곤 하지만 사진의 비중이 훨씬 높다. 낱개의 사진보다는 시리즈 사진이 더 많다. 그래서 사진 사이사이에 적힌 글을 중얼거리며 이 책 속 사진들을 음미하면 내레이션이 있는 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진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초반부에서 천사 다미엘은 실제 몸으로 부대끼지 않기 때문에 ‘아픔이 뭔지도 모르는’ 천사생활의 변화 없는 지겨움을 불평한다. 영원히 살 수밖에 없는 천사보다 매 순간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다. <한번은>에서 사진가 빔 벤더스는 로드무비를 찍듯 세계의 대륙을 훠이훠이 쏘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순서도 없고 맥락도 없다. 이것은 인간이 된 천사의 시선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 후반부에서 천사 다미엘은 가짜 천사 날개를 단 공중곡예사 마리온을 사랑하게 되어 천사 직분을 버리고 인간이 된다. 인간이 된 첫날을 보낸 뒤 다미엘은 말한다. “딱 한번이었는데도 영원처럼 느껴진다.” 사진의 속성처럼 들리는 말이다. 한번 셔터를 눌렀을 뿐인데 그 사진은 영원하고 유일하다.
<한번은>에서 빔 벤더스가 말하는 ‘한번은’이라는 단어는 딱 한번 마주친 장소이며 딱 한번만 존재하는 사진 속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장소와 그 장소에 존재했던 사물들의 외침과 이야기”를 찍는다고 말한다. 영화를 찍듯 사진을 찍은 덕분이다.
빔 벤더스의 사진에세이집을 보고 나면 그의 사진 전시에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게 된다. 사실 그는 1985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첫 사진전을 연 뒤 미국과 유럽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해왔다. 하지만 아직 한국 전시는 예정된 것이 없다. 대신 이 가을 부산영화제에서 빔 벤더스의 최신작 <피나>가 상영된다고 하니 위안이 될 법하다. 2011년 베를린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던 <피나>는 흔하지 않은 3차원(3D)예술영화다. 올해 2월 독일에서 개봉된 예술영화임에도 6개월 이상 상영된 거장의 걸작이다. 영화는 정지사진의 연속이니 사진을 감상하듯 영화를 보면 좋겠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빔 벤더스 사진집 <한번은>에 실린 오리와 집이 보이는 풍경(116쪽). ⓒ빔 벤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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