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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인간 심성의 심연 ‘낱말 한톨’에 담아

등록 2011-10-06 21:50수정 2011-10-06 23:00

노벨문학상 트란스트뢰메르
체험에서 심오한 주제 도출
일본 하이쿠처럼 짧게 압축
‘기억이 나를 본다’ 한국 출간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마다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돼온 인물이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954년 등단한 이래 10권이 조금 넘는 시집을 냈을 뿐이지만 스웨덴은 물론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왔다. 초현실주의적 작풍으로 인간 심성의 신비를 탐구한 그의 시들은 5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1931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트란스트뢰메르는 스톡홀름대학에서 문학사와 시학, 종교사, 심리학 등을 공부했으며 심리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1954년 <17편의 시>라는 무운(無韻)시집을 내면서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과작이긴 하지만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해왔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종종 자신의 체험이나 하나의 평범한 이미지에서 출발해 심리적 통찰과 형이상학적 해석으로 나아가곤 한다. 시인 자신의 삶, 또는 친척들의 죽음과 질병 등에서 심오한 주제를 끄집어내는 것은 그의 장기이다.

그의 시는 한편으로는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인 심미적 전통에, 다른 한편으로는 에즈라 파운드나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으로 대표되는 세계 모더니즘 시의 전통에 연결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사색에서 배태된 그의 시는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고 시공을 초월하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자랑한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탐구하는 그의 시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발언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메시지를 아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바다와 육지 사이의 싸움과 같은 자연 풍경의 상호 충돌을 통해 언론 자유와 언론 탄압 사이의 길항, 또는 자연과 그에 대한 인간의 영향 같은 모순적인 힘들을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발트해 군도를 다룬 시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의 일부였던 이 지역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들은 대체로 언어의 경제성과 구체성, 그리고 신랄한 은유를 특징으로 삼는다. 최근의 시들에서 그는 한층 작은 형태와 고도의 압축 쪽으로 방향을 옮기고 있다. 홍재웅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는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일본의 하이쿠처럼 짧고 압축적인 것이 특징”이라며 “시 제목에도 그저 1, 2, 3 같은 숫자를 붙이곤 한다”고 소개했다.

트란스트뢰메르는 1990년에 뇌졸중에 걸리는 바람에 반신이 마비되고 말하는 능력을 잃었음에도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 작품을 썼으며 2004년에 <거대한 수수께끼>라는 시집을 묶어 냈다. 그는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 페트라르카상, 스웨덴 한림원 노르딕상 등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그의 시와 에세이를 모은 <기억이 나를 본다>(이경수 옮김, 들녘)라는 책이 2004년에 출간되었다. 스웨덴어가 아닌 영역본에서 중역을 한 이 책은 그와 친분이 있는 고은 시인의 감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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