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김지석의 앎과 함
‘안보에는 비용이 없다.’
재임중 9·11 동시테러를 겪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그의 말은 틀렸다. 비용을 생각하지 않는 안보는 성립할 수 없으며 나라 안팎의 지지를 얻기도 어렵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국방비를 상당히 줄인 새 국방전략을 내놓은 데는 부시 정부의 부정적 유산을 정리하고 현실적인 길을 찾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임기를 1년가량 남겨둔 이명박 정부는 부시 정부와 닮은 점이 있다. 이전 두 정권보다 안보를 더 강조했으나 한반도 정세는 불안해지고 안보 비용은 더 커졌다. 4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북한 핵 문제가 더 나빠졌을 뿐만 아니라 지역 안보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틀 자체가 협소해졌다. 천안함·연평도 사태라는 유례없는 일까지 겪었다. 이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가장 긴요한 목표’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꼽은 것 자체가 한계를 잘 보여준다. 상황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가려는 의지보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대북 정책의 과제는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첫째는 핵 문제 해결과 평화협정 체결 등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구조의 확립이다. 북-미, 북-일 수교와 동북아 안보체제 구축도 여기에 포함된다. 둘째는 북한의 실질적인 개혁·개방이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 문턱을 확실히 넘어서도록 여건을 만들고 지원해줘야 한다. 식량난과 인권 문제도 그래야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셋째는 통일 기반의 확충이다. 남북 사이 교류·협력의 확대와 당국간 다양한 논의기구의 내실화를 통해 남북 주민과 세계가 통일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이 세 과제에 대한 접근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셋 모두에서 역주행을 했다.
대북 정책을 제대로 세우고 실천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이후 체제 대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중에서도 북쪽의 개혁·개방은 한반도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묶고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열쇠가 될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개성공단 사업이 유지되고 북-중 경협이 부쩍 강화되는 현실은 동북아 나라들 사이에 공통의 이해관계가 커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문제는 남쪽이 북쪽 개혁·개방의 최대 파트너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쪽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손을 내밀면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해질까봐 경계한다. 이런 우려를 해소하면서 개혁·개방 진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주체는 남쪽밖에 없다. 개성공단과 같은 대규모 경협이 여럿 이뤄져 성과를 낸다면 ‘한반도 경제’는 질적으로 비약하게 된다.
북한이라는 존재를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바꿔나가는 것은 현실적 선택이자 역사적 당위다. 또한 한반도를 하나의 단위로 상정하지 않는 체제 대안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런 노력 자체가 새 체제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된다. 그 끝에는 통일과 ‘한반도 체제’의 완성이 있다.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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