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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도시’ 뒤에 숨은 ‘자본주의 폐해’ 꼬집다

등록 2012-10-21 20:19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인
신용목 시집 ‘아무 날의 도시’
용산참사 등 연상되는 작품들
현안에 일대일 대응시키기보다
자본주의 자체에 비판 날세워
‘모호한 시어’ 읽는 재미 더해
신용목(사진)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아무 날의 도시>(문학과지성사)를 묶어 냈다. 앞선 두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와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에서 고향과 유년의 추억들을 주로 노래했던 시인은 새 시집 <아무 날의 도시>에서 도시의 현실로 초점을 옮겨 온다. 시집에는 표제시를 비롯해 도시를 다룬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거기 그려진 도시의 형상이 그다지 소망스럽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만한 일이다.

“나는 죽은 자의 메아리를 잘라왔다 불탄 구름이 흐린 재로 흩날리는 광장에서/ 목을 잃은 혀가/ 부르는 노래 시체의 목소리 속을 떠도는 바람의 목에 걸어주는 긴 머플러//( … )// 그리고 도심의 방 환한 무덤에 쌓여 있는 종이들 관짝의 먼지 낀 뚜껑을 열고/ 시체의 배 속에 남아 있는 밥알을 씹는다”(<죽은 자의 노래로부터> 부분)

“(이천구 년의 밤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에게 죽음을 묻지 마라 모든 장례가 순례가 될 때까지/ 모든 성지가 손가락으로 더듬어 순례를 떠나는 도시에서/ 생명에게 생명을 묻지 마라 모든 생활이 전쟁이 될 때까지”(<맹아이며 농아인> 부분)

신용목 시집 ‘아무 날의 도시’
신용목 시집 ‘아무 날의 도시’
인용한 두 시는 도시에서의 참혹한 죽음, 그리고 죽음으로도 그치지 않는 모종의 상처와 고통을 장송곡 풍으로 노래한다. 괄호 안에 표기된 연도를 참조해서 뒤의 시를 그해 연초에 벌어진 용산참사를 겨냥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이 동료 문인들과 함께 ‘용산’을 비롯한 우리 시대 아픔의 현장에 적극적으로 입회했다는 시집 바깥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그런 해석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시인 자신은 자신의 시를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회적 현안에 일대일로 대응시키기를 바라지는 않는 것 같다.

“나무마다 붉은 심장이 내걸린다, 저 맹세들/ 어떤 역모가 해마다 반란의 풍속을 되살리는가 허공을 파지로 구기며 진격하는 북국의 나팔 소리// 바람의 오랜 섭정에 나는 부역의 무리가 되어버렸다 도망하라 화를 피해 그러나/ 살갗을 벗기며 저무는 황혼의 저녁”(<적국(敵國)의 가을> 부분)

“맹세가 끝나자 꽃이 피었다, 아름다워라 나무마다 펄럭이는 흰 깃발들/ 허공의 주름이 환하게 펴지면/ 목 아래 떨어지는 검은 그림자”(<적국(敵國)의 봄> 부분)

일종의 ‘적국 연작’이라 이를 법한 두 시에 대해서도 이들을 포함한 시집 속 시들이 쓰인 현 정부 치하를 빗댄 것이라는 이해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역모, 반란, 섭정, 부역 같은 낱말들과 항복을 상징하는 흰 깃발은 시인과 정부 사이의 관계를 전쟁 비슷한 어떤 것으로 파악하게 유도하는 듯하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싸움을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에 국한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나 자신의 욕망까지 포함해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적국이며, 도시란 그 자본주의의 폐해를 가장 첨예하게 표상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번 시집의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고 그는 말했다.

신용목의 새 시집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미지와 비유들, 그리고 미완성인 상태로 끝나 버리는 구절들로 해서 보통의 독자에게는 매우 난해하게 다가올 법하다.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인 시인은 “세계라는 것이 단정하고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그런 깨달음이 시에서 의도적인 모호성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가 창안해 낸 모호하지만 매력적인 이미지들을 만나는 일은 이 시집을 읽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관 속으로 잘못 뻗은 아카시아 뿌리를/ 씹어 먹는 시체의 표정으로”(<노아의 여름> 부분)

“알고 보면,/ 아스팔트 줄무늬 검은 도시에서 알고 보면 둥근 바퀴에 묶인 일과와 알고 보면 콘크리트 캄캄한 굴속에 누워”(<폭우 지난> 부분)

“신은 지옥에서 가장 잘 보인다// 지옥의 거울이 가장 맑다”(<만약의 생> 부분)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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