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문화예술위원회 체제 개막 의미와 과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화예술위) 위원장으로 김병익(67)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이 선출됐다. 지난 10일 위촉된 문화예술위 설립위원 11명은 11일 서울 동숭동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에서 첫 회의를 열고 임기 3년의 새 위원장을 호선으로 선출했다. 김 신임 위원장은 “문화예술위에 대해 많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이런 자리를 맡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 조심스레 소감을 밝혔다.이로써 사실상 문화예술위 체제의 막이 오르게 됐으며, 1973년부터 활동해온 문예진흥원은 태어난 지 32년만에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됐다. 문화예술위는 이달 말 설립등기를 마치면 정식으로 출범하게 된다.
문화예술위의 가장 큰 특징은 관이 주도하던 문예진흥원과 달리 민간 자율기구라는 점이다. 정부가 원장을 직접 임명하는 등 정부 산하기관의 위치에 있었던 문예진흥원은 주로 문예진흥기금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지원정책에만 중점을 뒀다. 기금을 배분할 때도 형평성 원칙을 내세우며 적은 액수를 여러 곳에 지원하는 소액다건식을 고수했다. 또 지원한 기금은 반드시 그해에 작품화해야 한다는 경직된 원칙을 내세워 완성도가 떨어진 작품을 양산하는 빌미를 줬다.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와 괴리되고, 지나치게 장르별 틀에 갇힌 것도 단점으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문예진흥원을 민간 자율 기구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장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왔고, 마침내 법 개정을 거쳐 문화예술위로 바뀐 것이다. 현장 문화예술인을 주축으로 한 문화예술위는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큰 차원에서 예술 진흥을 위한 지원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중대한 기능을 하게 된다. 또 국고와 문예진흥기금으로 나뉘어 운영돼온 문화예술 지원창구가 문화예술위로 일원화돼 집중적인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문예진흥기금은 현재 5천여억원에 이른다.
문화예술위는 기금 지원에 있어 ‘선택과 집중’ 전략을 내세워 가능성 있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힘을 실어준다는 방침이다. 또 지원을 받으면 그해에 작품화해야 하는 등의 일회성·단발성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여러 해 동안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지원 범위를 창작뿐 아니라 유통·소비로까지 늘리는 등 예술 현장 중심으로 확대하고, 탈장르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에도 지원을 크게 늘려 예술의 다양성을 중시한다는 방침이다. 지방문화예술위를 만들어 지역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당장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많다. 문화예술위 위원들을 보면 예총·민예총·시민단체 출신들이 고루 섞이기는 했지만, 일부에선 진보적 성향의 인사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는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럴수록 공정성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원 정책이 특정 부류에 쏠리거나 여러 이익단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할 경우에는 역풍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너무 현장의 목소리에만 경도돼 국가적 차원의 장기적 정책 마련보다는 현안에만 끌려다닐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안정적 재원 확보 문제 또한 중요한 과제다. 지난해부터 더이상 문예진흥기금을 새로 모금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로또복권 기금 일부가 대체재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는 창작에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소외계층의 문화예술 향유를 돕는 복지적 성격이 강해 별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과제들을 얼마나 유연하게 풀어나가며 문화예술위 체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을지는 백지 상태에서 출발선에 선 11명 위원들의 어깨에 달려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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