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그리는 사상과 감정 형식적 기교는 장애물 이지요
북에서 만난 작가들 ⑤ 신인 박세옥·리호근
박세옥(66) 시인은 과묵한 인상이었다. 지난해 말 금강산에서 열린 홍석중씨의 만해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러 온 자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시종 말이 없는 가운데 자주 술잔을 기울이며 남의 말을 듣는 편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다변이었던 홍석중씨와는 대조적이었다.
60년대 이후의 시 63편 ‘해돋이’ 에 묶어
1939년 전남 무안 태생으로 월북한 그는 평양문학대학을 졸업하고 1961년 시 <동상 앞에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지난달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기념해 북쪽에서도 몇 권의 기념도서를 냈는데, 박세옥 시인의 시선집 <해돋이>(문학예술출판사)는 그 가운데 한 권이다. 이 책에는 6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가 발표한 시 가운데 63편이 묶였다. 앞부분에는 <그 분> <보천보전투 승리기념탑> <정일봉> <조선이여 빛나라>처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흠모하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흠모의 노래는 간절하고 애국에의 호소는 씩씩하지만 박 시인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새겨 듣기에는 한계가 있다. 남쪽 독자의 감각에는 정치색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중반 이후의 시들이 편하게 다가올 법하다.
“농장의 예쁜 처녀들/가만히 속삭이며 들여다보는/흰 박막아래/파릇파릇 햇잎/세잎 네잎 흔들며/파아란 땅을 펼쳤습니다/웃음많은 처녀들의 눈에/푸르른 들이 벌써 웃고있지 않습니까!”(<저 먼 산골짝>)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인 리호근 시인 역시 시선집 <통일차표 팝니다>(문학예술출판사)를 기념도서로 내놓았다. 리 시인은 지난달 23일 백두산에서 있은 ‘통일문학의 해돋이’ 행사 사회를 소설가 은희경씨와 공동으로 보았다.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비해서는 동안(?)에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시종 편안하게 남쪽 사람들을 대해 인상에 남았다.
<통일차표 팝니다>는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 민중의 염원을 노래한 일종의 ‘테마시집’이라 할 만하다. 1980년대편, 1990년대편, 2000년대편, 그리고 ‘서울 할머니’의 네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1980년대편은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다시피 형상화한 시 13편을 싣고 있다.
“오, 림수경!/최루탄냄새/상기도 풍기는듯 한 너를/이렇듯 으스러져라 껴안을 때/우리 목메여 흐느끼며 껴안은것은/한낱 너만이 아닌/너 백만의 ‘전대협’이였구나/반드시 반드시 오고야말/우리의 어쩔수 없는 래일,/통일된 내 땅이였구나!”(<‘전대협’이 왔다>)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시 <민족작가대회가 온다>는 지난달 열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앞두고 감격과 기대를 벅찬 호흡에 담아 노래한 작품이다.
남북민중 통일염원 담은 ‘통일차표 팝니다’
“온다 온다 오, 작가대회,/우리의 민족작가대회가 온다,/이 땅의 60년 저 더러운 분렬을 깨며/력사의 민족작가대회가/민족통일의 눈부신 경륜/저 6·15에 실려온다,/너 나 우리의 가슴가슴에 뜨겁게,/뜨겁게 달려온다!”(<민족작가대회가 온다>)
박세옥, 리호근 두 시인을 통해 살펴 본 북쪽 시들은 형식적 기교를 배제한 채 가능한 한 쉬운 말투로 감정과 사상을 표출하는 면모를 보인다. ‘미제’를 규탄하고 남쪽 당국의 폭압을 고발하는 경우를 제하고는 한결같이 밝고 긍정적인 어조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낙관, 이념과 체제에의 헌신과 그에서 얻는 보람이 주된 테마를 이루는 반면, 개인적 고뇌와 회의, 극단적이며 ‘반사회적인’ 상상력의 표출은 금기시되어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래 한 세기 가까이 연륜을 쌓아 오면서 내용과 형식 공히 복잡하게 발전해 온 남쪽 시와는 다른 방향의 ‘진화’ 경로를 밟아 왔다고 할 수 있다. <끝>
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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