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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문인들의 ‘섬진강 보트탐사’

등록 2005-08-18 17:31수정 2005-08-18 17:33

시인 안상학·고증식씨와 소설가 한창훈씨, 판화가 남궁산씨와 시인 박남준씨(왼쪽부터)가 지난 16일 오후 섬진강 보트 탐사에 나서 밝은 표정으로 노를 젓고 있다. 뒤로 보이는 다리는 화개장터 인근에 새로 세워진 남도대교다.
시인 안상학·고증식씨와 소설가 한창훈씨, 판화가 남궁산씨와 시인 박남준씨(왼쪽부터)가 지난 16일 오후 섬진강 보트 탐사에 나서 밝은 표정으로 노를 젓고 있다. 뒤로 보이는 다리는 화개장터 인근에 새로 세워진 남도대교다.
노 저어가다 내려 술 한잔…밤엔 별 헤고…

“압록에서 보트와 뗏목을 타고 노를 저어/하동포구까지 1박2일/가다가 은빛 모래톱에 내려 술도 한잔 걸치며/또 어디쯤의 강변에서 밥을 짓고/별을 헤는 밤을 보내는 것은 어떨는지.”

경남 하동 악양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는 박남준 시인이 지난달 동료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보낸 ‘악양통신’의 한 대목이다. 유례가 없는 문인들의 섬진강 보트 탐사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지난 4월 박 시인과 함께 현대상선을 타고 두바이까지 다녀온 소설가 한창훈씨와 시인 안상학씨, 경남 밀양의 시인 고증식씨, 하동에 이웃한 전남 구례의 ‘오토바이 시인’ 이원규씨, 그리고 문인들과 가까운 판화가 남궁산씨가 만사를 제쳐두고 섬진강으로 달려왔다.

박남준 한창훈씨등 6명
구례∼하동 30km 10시간 뱃길
이튿날 계곡에서 물놀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 인간의 본원적 꿈 아닌지”

애초에 함께하기로 했던 소설가 유용주씨와 시인 이정록·박두규씨, 그리고 제주의 시인 김수열씨 등이 막판에 포기하면서 뗏목은 포기하고 8인용 고무보트 한 척만 띄우기로 결정됐다. 출발지 역시 구례 간전 다리 앞 래프팅장으로 변경됐다. 기자까지 포함된 일곱 사람이 간전을 출발한 것은 지난 16일 오전 11시 무렵. 출발은 다소 불안했다. 보트 후미에서 ‘키’를 잡은 한창훈씨의 방향 및 강약 지시에도 불구하고 배는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주 지그재그 운행을 했다. “왼쪽 뭐 하노?” “오른쪽 1번 노 놀고 있나?” 식의 불협화음도 터져나왔다.

초반 여정은 자주 중단되었다. 갑작스러운 노동에 놀란 근육을 달래고 뱃속 시장기도 꺼야 했다. 찌는 듯한 더위와 땡볕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얼음과자와 맥주로 갈증을 식혔다.

화개에서 한동안 쉬며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는 운행에 속도가 붙었다. 그 사이 노 젓기에 익숙해진데다 해가 기울어 가면서 더위도 한결 누그러졌다. 안상학씨가 능청스럽게 매기는 선소리를 남궁산씨가 이어받는 등 분위기도 한결 화기애애해졌다. 강에서는 은빛 은어들이 뛰어오르며 일행의 탄성을 자아냈다. 해가 저물 무렵쯤에는 마침 구례에 문학강연이 있어서 내려온 여성 소설가 공지영씨가 ‘손님’으로서 배에 올랐고, 일곱 사내는 더욱 힘을 냈다.

그럼에도 하동 읍내에 가까운 지점의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8시30분이 지나서였다. 30㎞ 정도의 거리를 오는 데 걸린 시간은 10시간 가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느림보 운항’이었지만 어쨌든 제 몸을 놀려서 주파해 낸 거리였다. 일행은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늦은 저녁에 술을 곁들였다.


애초 1박2일 예정이었던 보트 탐사는 첫쨋날로 마무리하고, 이튿날은 계곡의 탁족과 악양천 은어 천렵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인적 없는 계곡에서는 얼음골 같은 냉기가 감돌았고, 검푸른 소로는 어느새 노랗게 익은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제 여름도 끝자락에 이르러 있었다. 보트 탐사에는 불참한 박두규씨가 탁족 이후 일정에 합류했고, 하동 악양 평사리에 사는 소설가 이림천씨는 놀랄만한 잡어 매운탕 솜씨로 일행을 감동시켰다. 많이 잡히지 않아 한 사람 앞에 서너 점씩밖에 돌아가지 않은 은어회는 입에서 녹았다. 여린 심성의 박남준씨는 “저 예쁜 걸 어떻게 먹어?”라며, 잡힌 고기들 중 꺽지 한 마리와 산메기 한 마리를 ‘구출’해 집으로 데려갔다.

“도시에 살면서 꿈만 꾸었을 뿐 내게 차례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방식을 여기에서 경험했다. 여유와 자연, 그것이야말로 인간적 가치가 아니겠는가.”

공지영씨의 말은 1박2일의 이색적인 ‘여름나기’를 함께한 문인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동/글·사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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