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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도 교수 “정부 문화통제 말아야” 유 장관 “문화계 표준계약서 올해 마련”

등록 2013-06-17 19:55수정 2013-06-17 21:36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과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문체부 청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과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문체부 청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담 l 유진룡 장관-도정일 교수
요즘 텔레비전에 방영중인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익광고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행복’이 등장한다. 한류나 전통문화나 관광 같은 문체부 광고에 익숙한 이들에겐 생경할 수도, 신선할 수도 있다. 27년간 문체부 관료 생활 뒤 6년 반에 걸쳐 야인 생활을 하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문체부 수장으로 돌아온 유진룡 장관의 ‘문화론’은 이 연장선에 있어 보인다.

<한겨레>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가치’라는 관점이 사회와 구성원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모색하기 위해 유 장관과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도 교수는 오랜 세월 문화산업 위주의 문화정책을 비판하며 ‘민주주의 가치의 확산’이라는 문화정책 근본 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대담은 지난 11일 서울 창경궁로 문체부 청사에서 김영희 문화부장의 사회로 2시간여 진행됐다.

사회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 이후 ‘문화융성’ 개념에 대한 의문이 많다.

유진룡(이하 유) 사실 취임사에 그 단어가 언급되는 줄 몰랐다. 이후 문체부에서 정리한 정의는 단순히 문화예술 진흥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소통, 배려, 나눔 같은 문화적 가치가 모든 걸 우선하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만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게 문화융성이다. 문체부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모든 부처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틈만 나면 얘기한다. 대통령도 크게 공감하고 자주 문화 얘기를 하니 다른 부처들도 긴장하는 것 같다.

도정일(이하 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빼앗기고 있다(웃음). 지금까지 문화라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랄 때의 ‘식후경’쯤으로 여겨져 왔다. 먹는 문제 다 해결하고 여유 있으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었는데, 문화는 그런 게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문화가 기본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걸 인식하고 있다니 반갑다.

문화융성이니 창조경제니 하는 게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나 단계가 아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데 있어 그 방법을 얘기하는 것이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
“문화는 ‘식후경’ 아닌 삶의 기본
시장논리에 종속 안되게 해야
색깔로 나누면 ‘문화 융성’ 안돼
문화복지는 소득재분배의 길”

유진룡 문화체육부 장관
“공동체 사회 되는 게 ‘문화융성’
정치권력 업은 문화지원 줄여
국민체감 사업에 집중할 것
산하기관 색깔 갖고 물갈이 안해”

그 얘기에 동의한다. 그런데 두 가지 어려움을 지적하고 싶다. 지금 문화는 시장 가치에 크게 좌우되고 시장 지배를 강하게 받아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문화적 가치와 시장 가치는 서로 다른 것이다. 문화가 시장 논리에 종속되면 “이거 팔아먹을 수 있나”라는 것이 문화에 관한 판단기준이 된다. 그런데 앞서 장관이 말한 소통, 배려, 나눔 같은 소중한 문화적 가치들은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과거 정권들이 문화를 시장 논리 앞에 꿇어앉혔다면 그 질서에 일대 수정을 시도하는 것이 새 정부 문화정책의 방향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또다른 어려움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관존민비 문화를 어찌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관이 갑이 되고 민은 을이 되는 것이 관존민비다. 관이 통제·지배·군림하는 문화는 ‘나쁜 문화’다. 이건 비민주적이고 반문화적이다. 민의 자율성·자발성·다양성을 존중하고 살려나가야 문화가 융성한다. 우선 문체부 안에서부터 관존민비 문화의 잔재를 걸러내는 일이 필요하다.

밖에서 생활해보니 관존민비 분위기가 확실히 있다. 사람들은 관 사무실에 가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장관 취임사에서 “아무리 친절하고 겸손하게 한다고 해도 더 엎드려라. 군림하는 직원은 절대 용서 안 한다”고 했다. 공무원한텐 사람들이 약하다 보니 그동안 몰랐는데 나가보니 남에게 상처 주고 군림하려는 나쁜 사람들이 많더라.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약자들을 공권력이 대변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에 영화, 방송 등 문화계 각 분야의 표준계약서를 완료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문체부에서는 여러 가지 문화지원 사업들을 많이 하는데, 지원은 하되 매사 통제하고 간섭하고 감독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배제와 배척, 박탈과 분할이 너무 많았다. 새 정부 문화정책은 부당한 배제와 배척, 불필요한 분할에 과감히 종지부를 찍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색깔이 뭐냐, 정부에 비판적이냐 아니냐 같은 근시안적 기준으로 국민을 분할하기 시작하면 지원을 아무리 퍼부어도 ‘문화융성’은 물건너간다.

사회 문화재정을 국가 전체 예산의 2%까지 끌어올리는 걸 목표로 내걸었는데, 가능한가? 확보되면 어떻게 쓸 것인가?

대통령 의지가 워낙 강하다. 올해 문화재정 규모가 5조원가량(1.47%)인데, 2017년까지 7조8000억원(2%)으로 늘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늘어난 예산으로 애먼 예술단체들만 배불리게 할 게 아니다. 지금 문체부 국고 보조사업이 1500개가 넘는다. 문체부 보조금은 문예진흥기금에 비해 액수가 큰데도 심의는 거의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에 떨어질 만한 사업만 정치적인 권력 업고 이리로 오는 것 아니냐 싶기도 하다. 올해 내내 연구해 내년에 제출하는 내후년 예산 때는 이를 1000개 아래로 줄일 거다. 대신 국민이 체감하는 곳에 집중하겠다.

문화복지는 소득재분배의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책 한 권 살 수 없는 시민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그게 바로 소득재분배다.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문화 향수는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시장이 지나치게 상업적 가치를 추구해 즐거운 표현, 다양한 향수, 의미 있는 창작의 기회를 위축시킬 때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시장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

동의한다. 다만 시장이 할 수 있는 걸 정부가 해선 안 된다. 정부가 음악 강사 내보내면 동네 음악학원이 다 죽을 수 있다. 학교에 예술 강사 파견 사업을 한다면 수용자들의 감성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국민 모두를 창작자로 만들 필요는 없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할 줄 아는데 음악회장은 텅텅 빈다. 감수성을 키워야 문화적인 사회가 된다. ‘엘 시스테마’(베네수엘라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 성공 얘기가 자꾸 나오니 지난 정권에서 초중고 오케스트라 200개를 만든다고 돈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가치는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거지 오케스트라 자체가 목표가 돼선 안 된다. 더는 그런 잘못은 하지 말자는 얘기를 직원들과 한다.

사회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공무원들이 실적 경쟁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보여주기식 사업 가짓수 줄여나가는 것만 해도 관으로선 큰일을 하는 거다.

직원들에게 계속 강조하는데 뭔가 막히는 느낌이 있다. 들여다보니 관료들에게도 패배의식이 있더라. 우리 예산도 쪽지예산이 많다. 자기 전문성과 소신 갖고 해봐야 위에서 쪽지 오면 들어줘야 하니 그런 패배의식이 생기는 거다. 거기서 벗어나 우리가 하고 싶은 일 하자고 강조한다. 이제는 정책을 만드는 우리도, 그 대상자인 예술인들과 국민도 모두가 행복한 그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 표준계약서 마련이 그래서 잘돼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삶의 리듬에 맞춘 개인의 문화정책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텔레비전 보는 데는 몇 시간, 게임에는 몇 시간, 책 읽는 데는 몇 시간을 할애할 것인가, 이런 것을 삶의 방식으로 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개인 행복을 위한 문화정책이다. 대중매체, 휴대폰, 게임 등이 국민의 가용 여가시간을 몽땅 집어삼키면 사회 전체의 문화적 저력은 크게 위축된다.

사회 새 정부 들어 금융 쪽 산하단체에서 물갈이가 제법 있다. 문체부 산하단체는 어떤가? 단체장을 임기 중간에 바꿀 가능성도 있나?

색깔 갖고 물갈이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냐 하는 전문성에 대한 쟁점은 있다. 또 자리 수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나가야 한다. 임기는 보장하지만 사실상 없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단체장들에게도 말했다.

정리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대통령 ‘문화재정 2%’ 강조에 힘 실린 문체부

유진룡 장관은 지난 정권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발령을 고사한 바 있다. 그 자신도 “다시는 공직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한 말은 두가지라 한다.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람들, 그런 문화예술인들도 안고 가야 한다는 점과 우리 사회가 너무 물질 중심, 경쟁 위주고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척박하다는 것이다. 문체부가 그런 데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런 걸 하고 싶지 않으세요?”라는 대통령의 물음에 거절을 못했다고 유 장관은 말했다.

솔직히 대담 전엔 대통령 이야기가 이리 많이 나올 줄 몰랐다. 전문관료 출신이면서도 할말은 하는 사람으로 정부 안팎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아온 유 장관이기에 더 그랬다. 그는 대담 당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안건에도 없었던 문화 얘기를 꺼냈다고 소개했다. 자발적 지역문화 성공사례를 지원하되 정부가 주도해선 안 된다는 얘기였다고 한다. ‘대학평가를 취업률로 하니까 문·사·철이 다 없어지는 거 아니냐’며 질적인 평가기준을 만들라는 발언도 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문화재정 2% 달성이나 예술인 복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문체부에 힘이 실린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을 짐작해볼 수 있게 했다.

사실 대통령의 취임사에 등장한 ‘문화융성’이란 표현이 1970년대식 정신문화 부흥이나 국가주의 문화정책을 연상시킨다는 우려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21세기식’ 문화융성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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