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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시는 사회적 약자 보듬고 사회 현실에 관심 가져야”

등록 2013-06-24 19:48수정 2013-06-25 16:00

안도현 시인(오른쪽)과 프랑스의 시인 겸 문학평론가 클로드 무샤르가 22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와 현실의 관계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도현 시인(오른쪽)과 프랑스의 시인 겸 문학평론가 클로드 무샤르가 22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와 현실의 관계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도현-프 무샤르 시인 ‘시를 말하다’

클로드 무샤르(72) 전 파리8대학 교수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불문학자 주현진씨와 함께 번역해 프랑스에서 출간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가 프랑스 최고 시인 미셸 드기와 함께 만들고 있는 <포에지>는 1998년에 이어 지난해 두 번째로 한국시 특집호를 내놨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은 그의 이런 공적을 기려 올해 제정한 공로상의 제1회 수상자로 그를 선정했다. 소설가 장 마리 르클레지오와 함께 프랑스 문단의 대표적인 ‘친한파’로 꼽히는 그가 22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과 만났다. 사회현실에 관심 있는 시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무샤르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자리다.

무샤르 “동화 ‘연어’ 한편의 시 같아
분단은 비극이지만 매혹적 문학소재”

안도현 “연어는 ‘어린왕자’ 모델로 써
예술가는 몸으로도 세계변화 힘써야”

무샤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된 안 선생의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를 잘 읽었다. 물속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연어처럼 생동감 있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장르가 흥미롭던데?

안도현(이하 안) 사실 그 작품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프랑스나 독일에는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성장소설이 있는데, 한국에는 거의 없었다. 동화를 읽던 아이들이 소설로 넘어가기 전 징검다리 삼아 읽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쓴 책이다.

무샤르 작품 초반부에서, 물속에 비행기가 가라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거대한 연어떼였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또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는 문장으로 작품을 시작하고 끝맺는 것은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고맙다. 사실은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소설에 요구되는 복선과 갈등 같은 구성적 측면에 자신이 없어서 시적인 장치로 처리한 것이다.

무샤르 안 시인의 본령이라 할 시를 읽어 보지 못해 안타깝지만, <연어>에서도 공동체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연어들이 토론하는 대목이 대표적이었고, 그걸 통해 안 시인의 시 세계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연어>가 처음 나온 게 1996년이었다. 한국 사회가 공동체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개인주의로 치달아 갈 때였다. 한국의 오랜 전통인 학생운동 역시 무너질 무렵이었다. 당시 학생운동권에서 신입생 학습 교재로 이 책을 많이 읽혔다고 들었다.

무샤르 한국은 분단과 독재 같은 정치·사회적 문제를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는 나라다. 분단 역사는 매우 비극적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문학인에게는 매우 매혹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한국 역사에는 20세기 세계사가 집약되어 있다.

나는 고교 시절까지는 반공교육에 찌든 철없는 문학소년이었다. 스무 살 봄에야 민주주의라든가 분단 문제 등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문학과 시대 상황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자신에게 부과했다. 한국의 문인들은 좋은 작품을 쓰는 것 말고도 역사와 사회 현실에 대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 지식인과 예술가는 단지 글로써만이 아니라 때로는 몸으로도 세계의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

무샤르 나는 바로 안 시인처럼 현안에 대해 시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시인을 찾고 있다. 시는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야 하고 현안과 관련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시인은 매우 드물다.

한국도 비슷하다. 시에서 사회 현안을 다루면 소재주의라 비판받기 십상이다. 어찌 보면 독자와 소통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는 시가 유행이다.

무샤르 물론 모든 시가 혁명적이어야 하고 저항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내가 지금 번역하고 있는 김혜순의 시는 직접적으로 혁명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내면과 상상으로 처리함으로써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맞는 말씀이다. 한국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근원적으로 차단되어 있을 때는 가령 당위로서의 통일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통일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 같은 시인들의 부담이다.

무샤르 <포에지>에서 1998년과 2012년 한국시 특집을 마련했던 경험을 살려 인터넷상에서 한국 시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섹션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행본 출간보다는 인터넷의 순발력에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이다. 단순히 작품만 올리는 게 아니라 작품에 관한 작가의 코멘트, 시대 상황 같은 배경 등을 두루 담고자 한다. 안 시인이 직접 추천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려 한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이메일을 통해 계속 논의하고 싶다.

좋은 생각이다. 한국시와 현실에 대한 무샤르 선생님의 관심과 애정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한국의 고도 전주에서 프랑스의 ‘젊은’(!)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반가웠다.

전주/글·사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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