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촬영진이 한국에 들어와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조율하는 일을 하는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조수진씨가 촬영지로 자주 온다는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을 찾아 자신의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나도 문화인프로덕션 코디네이터 조수진씨
사전조사부터 섭외·숙박·교통까지
작품 제작에 필요한 궂은일 도맡아
2010년 이후 동남아팀 방문 급증
“상대 문화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
사전조사부터 섭외·숙박·교통까지
작품 제작에 필요한 궂은일 도맡아
2010년 이후 동남아팀 방문 급증
“상대 문화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
조수진(40)씨는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가 꼭 우리 동네 같다”고 했다. 매달 한번은 꼭 오기 때문이란다. 남산도 마찬가지다. 매달 가다 보니 동네 뒷산처럼 친숙해졌다고 한다.
주욱 늘어선 한옥집 사이로 멀리 남산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골목이 바로 포인트예요. 외국인들에게 여길 보여주면 다들 감탄사를 질러요. 매번 오지만 언제 봐도 아름다운 곳이죠.” 조씨의 목소리 톤이 살짝 높아졌다.
‘외국인 관광객 가이드라도 하는 걸까?’ 싶지만, 알고 보면 조씨는 ‘영화인’이다.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 제작 일을 하는 라인 프로듀서다.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전체 프로듀서가 주로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치면, 라인 프로듀서는 촬영 현장에서 진두지휘를 한다. “대부분 라인 프로듀서를 프로듀서가 되기 전에 거치는 과정 정도로만 여겨요. 하지만 저는 라인 프로듀서만 전문으로 하겠다고 했죠. 업계에선 제가 거의 처음일걸요?”
하지만 라인 프로듀서 일로만 생계를 꾸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이 꾸준히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보수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새로 개척한 분야가 ‘프로덕션 코디네이터’다. 하정우 주연의 영화 <베를린>을 떠올려보자. 국내 촬영진이 독일 베를린으로 가서 영화를 찍으려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가 붙어 조율해야만 한다. 거꾸로 외국 촬영진이 국내에 들어와 영화를 찍으려고 하면, 역시 누군가가 붙어 전체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 조씨가 하는 일이 바로 이거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하고 무작정 인도로 갔어요. 델리부터 뭄바이까지 한달 반을 돌아다녔죠. 1993년 당시만 해도 인도 여행은 거의 안했어요. 그런데 저는 인도랑 정말 잘 맞더라고요.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보름 만에 다시 인도로 갔어요. 여섯달 동안 영어 공부도 하고 여행도 신나게 했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영화 일은 멀리한 채 여행을 다녔다. 인도는 물론 네팔, 홍콩, 대만, 타이 등 아시아 지역을 안방 드나들듯 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려고 안 해본 일이 없다. 고깃집과 카페에서 서빙도 하고, 골프장 캐디도 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아동복을 판 적도 있다. “아동복을 억지로 껴입고 리어카 위에 올라가 ‘골라, 골라’ 소리쳤어요. 돈도 돈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제겐 큰 자산이 됐죠.”
그러다 학교 선배인 송일곤 감독의 부름을 받고 1998년 영화 제작 일을 시작했다. 전문 라인 프로듀서의 길을 개척했다. <가족의 탄생> <김종욱 찾기> 등이 그가 참여한 영화다. 어느 날 서울영상위원회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핀란드에서 한국으로 다큐멘터리 촬영을 온다는데, 네가 라인 프로듀서이면서 영어도 좀 하니 이들을 안내하는 아르바이트라도 해볼래?”
일을 해보니 이쪽이야말로 ‘블루 오션’이었다. 한국으로 오는 외국 촬영진을 위한 프로덕션 코디네이터를 전문으로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입소문이 났는지 미국이나 유럽의 촬영진이 계속 그를 찾았다. 한국의 성형수술 열풍, 한복, 양궁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다큐가 많았다. 일을 맡으면 소재에 대한 사전조사부터 섭외, 현지 스태프 고용, 장비 대여, 숙박·교통 마련 등 온갖 일을 해야 한다.
2010년 이후에는 한류 열풍을 타고 동남아에서 한국에 영화를 찍으러 오는 팀이 부쩍 늘었다. “<헬로 스트레인저>라는 타이 영화 거의 전체를 한국에서 찍었거든요. 근데 이 영화가 동남아 전역에서 엄청나게 히트를 한 거예요. 이후 한국에 들어와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게 트렌드가 된 거죠.”
서울 북촌 한옥마을, 남산, 명동, 광화문, 인사동, 청계천을 많이 찾고, <겨울연가>의 영향으로 춘천 남이섬도 자주 간다고 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 이후엔 서울 강남도 많이 찾는단다. “촬영할 때면 그곳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일이에요. 북촌 한옥마을만 해도 관광객들을 통제하는 게 가장 힘들죠. 한번은 어린이대공원에서 벚꽃을 배경으로 촬영하기 위해 길을 통제하던 팀원이 ‘당신이 뭔데 막느냐’고 항의하는 분한테 따귀를 맞은 적도 있어요.”
인도에서 온 영화 촬영진 40명 가운데 29명이 도망가서 혼쭐이 난 경험도 있다. 불법체류하려고 작정하고 영화 스태프로 위장해 들어온 것이다.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고 난리를 친 끝에 28명을 붙잡아 추방했다고 한다. 1명은 아직도 못 잡았다. 2011년 당시 사건은 방송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서 나중에 고맙다며 영화 완성본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걸 보면, 촬영 때 겪었던 힘든 일들의 악몽이 떠오르죠. 그래도 ‘이 영화를 완성하는 데 내가 일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 뿌듯해요.”
그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를 이해해야 촬영은 물론 그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할 수 있어요. 한국의 여러 모습이 그들 나라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고민해야 하고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이미지가 좌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너무 거창한가요? 하하~.”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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