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이름짓지 못한 시

등록 2014-04-27 20:57수정 2014-04-28 15:40

한국작가회의 애도 시 릴레이

한국작가회의와 <한겨레>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가족뿐 아니라 지켜보는 모든 이의 슬픔을 달래고 보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작가회의 회원들의 시를 연속으로 싣는다.

이름짓지 못한 시

고 은

지금 나라초상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상감마마 승하가 아닙니다
두 눈에 넣어둔
내 새끼들의 꽃 생명이 초록생명이
어이없이 몰살된 바다 밑창에
모두 머리 박고 있어야 할 국민상 중입니다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서 27일 오후 한 실종자 가족이 빗속에서 흐느끼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나부끼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서 27일 오후 한 실종자 가족이 빗속에서 흐느끼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상에
세상에
이 찬란한 아이들 생때같은 새끼들을
앞세우고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몹쓸 살 판입니까

지난 열흘 내내
지난 열며칠 내내
엄마는 넋 놓아 내 새끼 이름을 불러댔습니다
제발 살아있으라고
살아서
연꽃봉오리 심청으로 떠오르라고
아빠는 안절부절 섰다 앉았다 할 따름
저 맹골수도 밤바다에 외쳤습니다

나라의 방방곡곡 슬픔의 한사리로 차올랐습니다
너도나도 쌍주먹 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분노도 아닌
슬픔도 아닌 뒤범벅의 시꺼먼 핏덩어리가
이내 가슴속을 굴렀습니다

나라라니오
이런 나라에서
인간이라는 것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무슨무슨 세계1위는
자살 1위의 겉이었습니다
무슨무슨 세계 10위는
절망 10위의 앞장이었습니다
사회라니오
그 어디에도 함께 사는 골목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뢰라니오
그 어느 비탈에도
서로 믿어 마지않는 오랜 우애가 자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흔히 공이 없고 사만 있다 합니다
아닙니다
사도 없습니다
제대로 선 사만이 공을 낳습니다
신성한 사들이 다 썩어문드러진 것입니다
이런 사로
권세를 틀어쥐고
부귀를 꽉 움켜잡고 있는 죽음의 세월입니다

오늘도 저 남녘 앞바다 화면 앞에 있습니다
아무리 땅을 친들
땅을 쳐
피멍들 손바닥뿐인들
내 새끼의 환한 얼굴이 달려올 리 없건만
밤 지새울
멍한 아침바다를 바라봅니다

어찌 엄마아빠뿐이겠습니까
이 나라 풀 같은 나무 같은 백성 남녀노소라면
저 과체중의 선체가 기울었을 때부터
하루 내내 실시간의 눈길이 꽂혀왔습니다
그 선체마저 잠겨
겨우 꼬리만 들린 채
나라와 세상살이 갖은 부실 갖은 비리
하나하나 드러내는 통탄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런 역적 같은
이런 강도 같은 참변 앞에서
과연 이 나라가 나라 꼬라지인가 물었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야만이 저지른 희생 앞에서
이 사회가
언제나 청정한 하루하루일 것인가를 따졌습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얼마나 인간이었던가를 뉘우쳤습니다
영혼이라는 말
양심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몰라야 했습니다 알아야 했습니다

내 새끼야
내 새끼야
내 새끼야
꽃들아 초록들아

이토록 외치는 이 내 심신 차라리 풍덩 내던져
우리 모두 빵(영)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둘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나도 너도
나라도 무엇도 다시 첫걸음 내디뎌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고도성장의 탐욕으로 마비된 것
이른바 무한경쟁으로 미쳐버린 것
이른바 역대권력에 취해버린 것
하나하나 각고로 육탈로 떨쳐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1인과 10인의 향연이 아닌
만인의 영광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못 박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태는
올가을이면
내년 봄이면 파묻어버릴 사태가 아닙니다
1백년 내내 애도해야 합니다
죽은 꽃들을 그 앳된 초록들을
이 내 피눈물의 새끼들을 망각을 물리치고 불러내야 하겠습니다
허나 지금
아 이 나라는 울음 복 울부짖음 복이 터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분노의 복이 터진 나라입니다

내 새끼야
내 새끼야
내 새끼들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6일째인 2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기원문 사이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2014.4.21 /연합뉴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6일째인 2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기원문 사이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2014.4.21 /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