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계급장 떼고 어울리는 공간…어릴적 친구처럼

등록 2014-06-12 19:12수정 2014-06-13 15:40

제주도 명물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의 교류 공간을 이식한 서울 홍대앞 쫄깃쎈타가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이곳에선 생면부지 사람들도 금세 어릴 적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게 된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제주도 명물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의 교류 공간을 이식한 서울 홍대앞 쫄깃쎈타가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이곳에선 생면부지 사람들도 금세 어릴 적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게 된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15) 서울 홍대앞 쫄깃쎈타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3-16번지. 반듯하지만 왠지 촌스러운 궁서체로 ‘쫄깃쎈타’라 쓴 간판이 보인다. 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아! <애욕전선 이상없다>로 유명한 만화가 메가쑈킹(본명 고필헌) 등이 만든 제주도 협재해수욕장의 명물 게스트하우스. 혼자 온 여행객들이 서로 마음을 트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곳. 그런데 쫄깃쎈타가 왜 홍대앞에?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니 주황색 문에 그려진 메가쑈킹의 자화상이 “쫄깃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말풍선으로 반긴다. “자동문 아닙니다. 자력으로 여세요”라는 쪽지가 붙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었다. 쭈뼛거리며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들려온다. 언뜻 둘러보니 여느 카페나 술집과 다르지 않다. 다만 대부분 단체손님처럼 보인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음악평론가 김작가가 다가온다. “홍대 쫄깃쎈타에 온 걸 환영해요.” 사정은 이랬다. 김작가와 메가쑈킹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자마자 마음이 통했다. 100일 연속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얼마 뒤 메가쑈킹은 제주도로 떠나 쫄깃쎈타를 만들었다. 김작가는 제주 쫄깃쎈타로 놀러가 작은 공연을 기획했다.

"노세노세~ 홍대쫄깃쎈타에 모여서 노세!" [한겨레담]

만화가 메가쑈킹 등 주도 문열어
운영은 회원제로, 안주는 공짜로
직업·국적 다양한 ‘쫄친’ 250여명
생면부지 사람들도 터놓고 만나
파티, 공연, 강연 행사도 가능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약 준비”

어느 날 메가쑈킹과 그의 친동생 고원헌씨, 김작가는 서울에도 쫄깃쎈타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제주 쫄깃쎈타에서 숙박 기능을 빼고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공간의 기능만을 특화하기로 한 것이다. 홍대앞에 가게를 얻어 공사를 하고 직접 페인트를 칠했다. 지난 3월 초 문을 열었다.

이곳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월회비 3만원을 내면 ‘쫄깃한 친구들’(쫄친) 회원이 된다. 쫄친은 맥주, 위스키, 보드카, 데킬라 등 술은 돈 내고 사먹되, 안주는 공짜다. 다만 마른안주, 과자 등을 스스로 가져다 먹거나 주방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손수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규칙이다. 설거지도 직접 해야 한다. 낮에 오면 커피도 무료다. 현재 쫄친은 250여명이다. 비회원은 하루 입장료 1만원을 내면 맥주 1병을 준다.

쫄깃쎈타의 소품.
쫄깃쎈타의 소품.
쫄친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음악가, 웹툰작가, 아이티산업 종사자, 디자이너, 옷가게 주인, 사진작가, 기자, 방송 프로듀서, 요리사, 컨설턴트, 항공사 승무원, 화가, 백수…. 국적도 다양해 일본인, 미국인, 크로아티아인도 있단다. 다양한 쫄친들이지만 처음부터 직업과 나이를 굳이 묻지도 밝히지도 않는다. 함께 어울리다 보면 서로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안면이 있던 인디 밴드 줄리아하트, 가을방학의 정바비가 다가와 말을 건다. 쫄친인 그는 “낮에는 여기 와서 책 쓰는 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술을 마신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가사 쓰기의 영감도 얻고, 무엇보다 재미있어 좋다”고 말했다. 가사 쓰기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이곳에서 짬짬이 쓴 글들은 산문집 <너의 세계를 스칠 때>로 묶여 최근 출간됐다. 배우 문정수씨가 갑자기 앞으로 나와 “드라마 <밀회> 후속으로 방송되는 <유나의 거리>에 ‘망치파 두목’으로 출연하게 됐다”고 알리자 사람들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마음 단단히 먹고 사람들이 잔뜩 모인 테이블에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다들 스스럼 없이 술을 권하고 말을 건다. 화장품, 생활용품 등을 파는 매장에서 일하는 김덕균(29)씨는 “손님과 매장 직원의 표피적 관계 속에서만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그리워져 제주도 쫄깃쎈타를 찾아갔다. 이후 이곳도 알게 돼 매주 쉬는 날마다 온다”고 했다. 강연주(31)씨는 “사회에서는 대단한 사람들도 여기서는 계급장 떼고 만난다. 표면적 인간관계에 질린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이곳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처럼, 대학교 새내기 과방처럼 지내면 그렇게 반갑고 재밌을 수 없다”고 말했다.

쫄깃쎈타의 벽보.
쫄깃쎈타의 벽보.
주방에서 김수림(35)씨가 바삐 움직인다. 물에 불린 마른오징어에 무, 고추를 넣고 졸여내고, 미역국도 끓인다. 완성된 요리를 여러 접시에 나눠 담더니 김작가에게 “이거 아무 테이블에나 갖다 주세요” 한다. “번역, 칼럼 쓰는 일을 하는데, 제가 또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 먹이는 걸 좋아한다”며 이번에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누군가가 와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한다. “누나, 이거 진짜 맛있어요. 고마워요.”

주방을 찬찬히 보니 ‘함께 모아 먹는 쌀통’이 있다. “집에서 쌀 좀 가져와”라고 쓰여 있다. 김작가는 종종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쫄친들을 대접한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채우자!”라는 쪽지가 붙은 ‘오픈 냉장고’를 열어보니 고추장, 양념, 음료수, 냉동 피자, 얼음 등 각종 식재료들이 그득하다. 누구나 가져다 먹을 수 있고, 누구나 채워놓을 수 있다. 한쪽에는 라면, 마른안주, 스낵 등이 잔뜩 쌓여 있다. 김작가는 “술만 빼고 외부에서 음식을 가져오거나 치킨, 피자 등을 시켜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쫄친의 또 하나의 특권은 이곳에서 파티, 공연, 강연 등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작가는 “요새 근근이 적자를 면하고 있는 상황인데, 얼마 안 되는 수익금을 모아 최근 빔프로젝터를 설치했고, 앞으로 피에이(PA·음향확성장치)도 설치해 강연이나 공연을 하는 데 불편함 없도록 할 계획”이라며 “지금까지 에스엔에스(SNS)의 오프라인 버전 같은 교류가 주가 되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