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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일제가 한양성곽 부수고 지은 조선신궁터 발견

등록 2014-08-13 11:59수정 2014-08-13 22:43

13일 오전 서울 한양도성 남산 회현자락의 조선신궁 배전터 발굴 현장에서 조사원들이 유적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신궁은 1925년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교화수단으로 건립했으며, 1945년 10월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불태웠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3일 오전 서울 한양도성 남산 회현자락의 조선신궁 배전터 발굴 현장에서 조사원들이 유적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신궁은 1925년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교화수단으로 건립했으며, 1945년 10월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불태웠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궁 건물 중 가장 큰 배전 터 확인
190여m 성곽 기단부 온전하게 나와
전문가 “신궁이 성곽 훼손 1차 원인”
1925년 일제가 서울 남산자락 한양성곽을 부수고 지은 조선신궁터가 발견됐다. 신궁터 부근에서는 일제가 훼손한 약 200m의 한양성곽 기단부가 옛 모습대로 나왔다.

서울시는 13일 ‘남산 회현자락 3단계 정비사업의 발굴조사 성과와 현장을 공개했다. 중앙광장(남산 분수대) 일대를 조사해 드러난 189.3m의 조선시대 한양도성 자취다. 또 사진과 문헌으로만 전해졌던 일제강점기 ‘조선신궁’ 건물 가운데 ‘배전’ 터와 1960년 4·19혁명 때 철거된 이승만 대통령 동상 기초부분도 확인됐다. 남산 자락에 묻혔던 20세기 역사적 현장이 옛 터를 드러낸 것이다.

조선 신궁 배전터는 콘크리트 기초와 기둥자리 등이 한양성곽터 부근에서 드러났다. 식민통치 수단으로 건립한 조선신궁 건물들 가운데 가장 큰 건물이었다. 조사단 쪽은 “성곽 아랫부분이 배전 기초에서 지하 2~3m 깊이에 3~4단 규모만 남아있어 신궁 조성이 남산 도성을 훼손한 1차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함께 나온 189.3m의 성곽 기단부는 남산 발굴 이래 가장 큰 규모다. 성벽 기단부는 땅밑 1~3m 아래에서 1~7단이 남은 상태로, 조선 태조, 세종을 거쳐 숙종에 이르는 시대별 성쌓기 양식이 두루 보인다. 출토유물로는 성곽 위 낮은 담(여장)을 쌓을 때 쓰는 각형전(角形塼)과 이곳이 한양도성 전체 97구간 중 60번째의 ‘柰(내)’자 구간이란 내용을 새긴 성돌 등이 나왔다.

조선신궁은 총독부가 일왕을 받들기 위해 지은 관립신사다. 거대한 돌계단과 참배로를 조성해 당시 남산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었다. 일제 의 강요로 40년대초엔 매년 200만 이상이 참배했다. 해방 뒤인 1945년 10월 일제가 철수하면서 불태웠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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