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르파주.
프랑스 만화가 에마뉘엘 르파주
작년 부천국제만화축제 작품상
올 축제서 <체르노빌의 봄> 특별전
2008년 체르노빌 파견돼 작업
“르포르타주로 해석 말아줬으면”
비극에도 지속되는 삶의 감동 담아
흑백·채색 나눠 비극·생명 표현
작년 부천국제만화축제 작품상
올 축제서 <체르노빌의 봄> 특별전
2008년 체르노빌 파견돼 작업
“르포르타주로 해석 말아줬으면”
비극에도 지속되는 삶의 감동 담아
흑백·채색 나눠 비극·생명 표현
빛바랜 청백색 셔츠 오른쪽 주머니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세월호 유족을 찾아갔었어요?”
“네.” 한국을 처음 찾은 프랑스 만화가는 담담했다.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궁금했다.
“다른 것을 할 수 없기에, 유족들은 진실을 요구하며 그렇게 싸우는 겁니다. 그들의 싸움은 애도의 한 방식이에요.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라면, 문화가 어떻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가 전혀 다르지만, 깊은 공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이 주요하게 다뤄온 “진실을 요구하는 싸움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휴머니티”라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에마뉘엘 르파주는 한국에 그리 널리 알려진 만화가는 아니다. 일부 애호가들이 1976년 니카라과 내전을 다룬 <게릴라들>을 통해 그를 인식했다. 지난해 3월 <체르노빌의 봄>(맹슬기, 이하규 옮김/길찾기 펴냄)이 출간됐고, 그해 8월 부천국제만화축제 해외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경기도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13일 그를 만났다. 이날 개막한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선 <체르노빌의 봄>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르포르타주 만화’의 전형으로 분류한다. 500만명이 방사능에 피폭되고, 2만5천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2008년 4월, 문화예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프랑스 ‘데생악퇴르’(Dessin’acteurs·활동하는 데생)는 회원인 그를 체르노빌에 파견했다. 스스로 작품 속에 체르노빌 파견 제안에 ‘르포르타주를 해볼 기회가 생겼다’며 ‘증언자, 행동가, 투사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그는 <체르노빌의 봄>을 원전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주로 해석하지 말라고 했다. “이 작품에는 원전에 대한 특정 메시지나 객관적 진실을 전하려는 어떤 의도도 없습니다.” 뜻밖의 답변이었다.
“원전 르포르타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나만의 주관과 감수성이 담긴 독립적인 작품입니다. 체르노빌에서 내밀하게 경험한 나만의 감정과 느낌, 내면에서 감지한 것들을 드러내려 한 것입니다.” 설명을 이어갔다. “나도 체르노빌에 갈 때는 핵 오염 지역, 음울하고 어두운 인식을 가졌습니다. 죽음과 슬픔, 비극의 장소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실제로 본 체로노빌의 아름다움에 놀랐습니다.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명이, 삶이 지속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이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초 ‘데생악퇴르’의 파견 의도와 달리 “이런 감동을 작품에 드러내려 했고”, 책의 제목도 <체르노빌의 봄>으로 정했단다.
체르노빌에 다녀온 뒤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2012년 11월 완성한 그의 만화 한 컷 한 컷이 회화 작품처럼 아름답게 그려진 것도 이런 까닭이다. 166쪽(한국어판 기준)의 작품 가운데 정확히 절반(83쪽)은 흑백톤을 유지한다. 체르노빌의 피해 수치와 방사능의 위험성을 제대로 모른 채 원전 화재 수습에 나선 소방관, 군인, 그로 인한 피해를 심각하게 다룬다. 방치된 자동차, 병들어 퇴직한 바시아의 얼굴 등에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 채색은 붉은색과 노란색뿐이다. 그는 “핵사인(핵물질 식별 표식)의 경고색을 암시하는 장치”라 했다.
하지만 두 손으로 새싹을 받쳐든 여성의 초상화 컷(84쪽)에 처음 초록색이 등장한 뒤 화면은 급속하게 밝아진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초록색 자연은 작품 후반부에 이르면 2쪽 분량을 한 컷에 담은 화려한 수채화로 변신한다. “체르노빌에서 내가 본 삶, 조금씩 되살아나다 어느 순간 확 다가오는 생명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인류 최악의 원전 참사 현장을 기록한 작품이지만, 거칠고 황량한 모습이 아닌 여러 폭의 채색화로 그려진 건 ‘의도된 장치’라는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 체르노빌에서 내가 느낀 삶에 대한 감동을 함께하길 바랍니다.” 처음 한국을 찾은 그의 바람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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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체르노빌의 봄> 한 장면.(위) 13일 개막한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현장을 찾아 그곳에서 움트는 희망을 그려낸 에마뉘엘 르파주의 만화 <체르노빌의 봄>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부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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