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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400년 푸른 세월이 담긴 청화백자의 은은한 향기

등록 2014-10-02 21:03수정 2014-10-03 23:44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1 소상팔경도를 그려넣은 18세기의 백자청화산수무늬항아리. 2 18~19세기의 백자청화풀꽃무늬표주박모양병(보물 1058호). 3 15~16세기의 백자청화매화새무늬항아리(국보 170호). 4 18~19세기의 백자청화산수무늬시명팔각연적(보물 1329호). 5 18세기 백자청화까치호랑이무늬항아리. 민화보다 이른 작품으로 곡면에 묘사한 필력이 뛰어나다. 6 19세기의 백자청화풀꽃무늬사각합. 7 백자청화산수무늬시명팔각연적의 윗면. 8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청화백자병으로 꼽히는 ‘홍치이년’연호(1489)가 붙은 소나무대나무무늬항아리(국보 176호). 9 15세기의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국보 219호). 도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문화‘랑’] 조선 청화백자

조선시대 왕족과 사대부들은 수백년 내내 푸른빛 도자기를 아끼고 사랑했다. 푸른빛 안료를 찍어 병과 항아리, 벼루에 그림과 싯구를 쓰고 그린 조선 청화백자다. 1300도 이상의 고열로 구워 빛을 얻은 이 명품 도자기들이 이 가을 역대 처음 한자리에 모여 선보이고 있다.
이 도자기를 거쳐간 400여년은 푸르디 푸른 세월이었다. 푸른빛 안료를 붓에 찍어 병과 항아리, 벼루에 그림과 싯구를 쓰고 그렸다. 1300도 이상의 고열로 구워내어 빛을 얻은 백토 위 그림과 글씨의 빛깔은 한반도 가을 하늘을 닮았다. 은은하고 맑은 조선 청화백자의 푸른빛은 살아있고, 아끼는 선조들의 마음 또한 쪽빛처럼 푸르렀다.

조선왕조 600년 내내 왕족과 선비들의 미의식을 만들어냈던 본산인 조선 청화백자의 새로운 세계가 이 가을 펼쳐지고 있다. 30일부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조선청화(靑畵) 푸른빛에 물들다’가 시작됐다. 왕실 도자의 꽃 조선 청화백자와 중국, 일본의 동시대 명품 등 500여점을 모은 역대 최초, 최대 규모의 기획전시다. 15세기 조선 청화백자의 태동부터 18세기의 절정기와 19세기의 대량생산기, 그리고 20~21세기의 현대적 계승까지 조선 청화백자의 거의 모든 흐름을 모았다. 17~20세기 무역도자로서 유럽에 ‘쉬누아즈리’라는 중국바람을 일으켰던 중국의 장식화·규격화한 청화백자와 달리 조선의 청화백자는 수출상품이 아니었다. 그래서 절제미와 여백의 기품이 넘치는 다품종 소량생산 일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전시실에서 줄줄이 만나는 둥글둥글한 청화백자들은 뛰어난 입체 회화 작품들의 성찬이다. 가을하늘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감각과 한국인들이 쓰는 옷과 그릇, 생활용품의 색깔 속에 그림자를 드리운 청화백자들의 진경 속으로 전시마당은 손짓한다.

악조건을 뚫고 피어난 푸른 꽃

얇지만, 강하고 백색바탕에 투명한 빛을 내는 청화백자는 최고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백자토를 섞고 주물러 다양한 모양새의 그릇을 만들고 코발트 안료로 표면에 그림과 무늬를 그린 뒤 1300도 이상 굽는다. 1000도 이상 고열을 가하면, 흙이 무너져내리거나 안료가 변색되기 십상이다. 흙 배합이나 불 때는 온도조절에 고도의 감각과 안목이 필요하다.

고려 말 중국에서 청화백자가 전래된 이래 세종대인 15세기초부터 생산을 시작한 조선 장인들은 여러 악조건과 싸웠다. 안료 코발트를 전량 수입해야했고, 청화백자를 무역품으로 생산한 중국, 일본의 대량 제조체계도 없었다. 용도도 왕실과 사대부만으로 제한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료의 절제된 사용을 통한 은은한 발색과 여백이 돋보이는 문인화풍 그림을 넣는 독창적 양식이 피어났다. 왕실 화원들이 직접 도자제조소인 광주 분원에 내려가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넣었던 것이다.

2부 ‘청화백자, 왕실의 예와 권위’에 선보이는 왕실의 대형 청화백자 용무늬항아리(용준) 대표작들에서 이런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함께 전시된 중국 명대의 용준이 짙은 남빛표면에, 가득한 장식무늬와 꽉 틀잡힌 모양새라면, 조선 용준들은 대칭을 피한 헐렁한 듯한 자태에 은은한 색감을 띠어 차이가 분명하다.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청화백자인 ‘백자청화흥녕대부인묘지’(1456년, 고대박물관 소장)는 코발트 안료로 무덤주인의 내력을 써넣어 예의 표상으로 청화백자를 생각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동국대박물관의‘백자청화 송죽문 홍치이년명 항아리(1489년)를 비롯해 조선 전기 매죽무늬항아리 대표작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들은 화원들이 그린 군자 그림의 격조가 깃든 명작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백토 위 코발트 안료로 빚어
한반도 가을 하늘을 닮은 듯
15C 태동기부터 현대까지
절제미와 여백의 기품 넘치는
조선청화백자의 전모 한눈에

20세기 이래 청화백자의 미감을 계승한 근현대 도예작품과 그림들을 모은 5부 전시장. 노형석 기자
20세기 이래 청화백자의 미감을 계승한 근현대 도예작품과 그림들을 모은 5부 전시장. 노형석 기자
정신과 생각이 흘러가는 그릇

명·청의 수출용 자기와 달리 조선 청화백자는 화원이 직접 그림을 그려넣은 문인 취향의 화폭과 다름 없었다. 왕족과 사대부들은 청화백자의 그림과 시들을 감상하며 마음을 갈고 닦았다. 16세기 일어난 전란으로 흐름이 끊어졌지만, 18세기 영·정조대 문화중흥기에 왕실이 문인 취향을 이끌면서 숱한 문인풍의 시와 그림이 그려진 청화백자가 다시 생산된다. 가을풀잎 무늬가 그려지거나 중국 동정호 절경을 담은 소상팔경도가 그려진 청화백자, 집이나 궤짝 모양으로 아기자기하게 빚은 연적 등이 3부에서 아취를 뽐낸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서화 골동, 분재 취미가 반영된 것들도 있다. 매화, 파초를 비롯해 문인들이 키워 감상했던 분재와 괴석 화초들이 청화백자 표면에 가득하다.

4부 ‘청화백자, 만민의 그릇이 되다’전시실에 가면, 벽장 가득 채워진 다종다양한 형태의 19세기 청화백자들 자태에 입을 쩍 벌리게 된다. 왕실, 사대부 전유물이었던 청화백자 향유층이 중인과 상인층으로 확대됐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중국의 대량생산으로 안료가격이 싸지면서 종류와 형태가 다양해지고 생산량도 대폭 늘어났다. 19세기 들어 유교사회 조선이 급속히 세속화하면서, 장수와 복을 비는 마음을 담은 여러 수복 글자와 길한 열가지 동물상인 십장생 문양 등이 표현된 것도 이전과 다르다. 4부 마지막에는 고종이 나고 자란 운현궁 명문이 있는 19세기 왕실용 청화백자들이 보인다. 물밀듯 들어온 청나라 청화백자의 물결 속에서도 왕실의 청화백자가 일관된 격조를 유지해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모으는 것만이 능사일까

말미 5부는 청화백자의 미학을 계승했다는 여러 근현대 도예가, 화가들의 작품 모음이다. 푸른빛 점으로 채워진 김환기 대작과 이우환 작가의 점·선 그림, 도예가 박영숙, 황갑순씨의 미니멀한 청화백자 작품 등이 나왔다. 무더기로 쏟아진 19세기 청화백자를 보고나서 갑자기 나타나는 모던한 감성의 근현대 도예품과 그림들 앞에서 어리둥절질 수 있다. 1880년대 청화백자를 생산하던 광주 분원리 왕실가마가 민영화된 이래 일본 영향을 받으면서 전망을 고민하던 구한말과 식민지시대 장인들의 작품들은 뭉텅 빠졌다. 전시는 청화백자가 19세기 만인의 것으로 대중화했다고 강조하지만, 당시에도 서민들은 구할 수 없는 고급품이었고, 중국 청화백자를 왕실에서 앞장서 대량 수입했다는 점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방병선 고려대 교수(도자사)는 “명품들을 처음 집대성한 의미가 크지만, 중국 일본 자기와의 차이점이나 18~19세기 제작이 세속화된 배경, 근대기 이후 장인들의 청화백자 제작 양상 등 중요한 요소들을 놓친 게 눈에 걸린다”고 평했다. 지금 우리가 계승한 청화백자의 미학적 실체가 정말 무엇인지 여전한 고민거리또한 남겨주는 전시다. 11월16일까지. (02)2077-9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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