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과 스밈
2000년대 이후 세계미술계에서 한국하면 떠올리는 열쇳말은 단연 ‘비엔날레’다.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이 국제미술제를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여는 나라로 꼽힌다.
9월부터 두달간 기자가 돌아본 비엔날레 전시장은 여섯군데다. 우선 대도시의 3대 비엔날레가 있다.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를 내건 광주비엔날레(9일까지)를 필두로 ‘세상 속에 거주하기’를 주제로 한 부산비엔날레(16일까지), ‘귀신, 할머니, 간첩’이란 색다른 단어를 주제어로 내세운 미디어시티서울(23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전문 비엔날레로는 지난달 끝난 대구사진비엔날레와 창원조각비엔날레(9일까지), 공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30일까지)가 진행중이다. 과학·예술의 융복합을 다루는 대전비엔날레도 22일 개막해 내년 1월까지 치러진다.
2000년대 이후 비엔날레는 포화상태다. 지역 브랜드 팔기에 집착한 지자체들의 창설 경쟁 탓이다. 유난히 많은 행사가 집중된 올해는 전시 보기가 고역에 가까왔다. 주제와 개념은 대부분 산만하고 난해했다. 전시 형식은 편차가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등 시대 상황을 꿰뚫고 찌르는 불온한 기획들이 거의 없었다.
특히 운영위원회 내분으로 프랑스인 감독이 수개월만에 급조한 부산비엔날레는 최악이었다. 휑한 전시장에 관객과 동떨어진 현대미술품들의 공허한 독백만 난무했다.
근현대 비엔날레는 원래 국가 권력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미술인들이 주도한 이슈 투쟁의 산물이었다. 올해 한국 비엔날레들은 그 정반대 지점에 있다. 미술인들이 비엔날레를 끌어가는 구동력을 상실한 징후들이 두드러진다.
광주 특별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홍성담씨의 닭그림 전시가 시와 재단에 의해 보류되자 작가는 결국 전시를 포기했다. 비엔날레가 지방 정치 권력의 부속물임을 드러낸 것이다.
부산시를 업은 오광수 전 운영위원장이 심사에서 2등에 그친 프랑스인을 감독으로 눌러앉혔다가 미술인들 보이콧으로 사퇴하고, 존립까지 뒤흔들린 부산비엔날레의 파행도 비슷하다. 비엔날레를 소유물로 여기는 지자체의 관료주의와 이런 관행에 순응한 미술계 인사들의 무기력한 야합이 근본적 요인이다.
예산집행 문제로 행사 개막 수개월 전 감독을 뽑아 벼락치기로 준비하고 2년 전 행사의 전시 표지판을 방치해둔 대구사진비엔날레와 창원조각비엔날레의 뒷모습들은 지자체의 후진 욕망이 빚은 안쓰러운 단면들이었다. 독특한 주제어로 분단과 냉전의 그늘을 탐색한 미디어시티서울이 그나마 호평을 받았지만, 애초 지향했던 첨단 미디어아트 전시 형식은 별다른 설명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때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 중단 압력 논란이 일자 영화제 쪽은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전검열, 상영 중단은 없다”고 일침을 박았다.
미술계는 딴판이었다. 홍성담 그림 전시 중단 압력에 대해 광주비엔날레 재단 쪽은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 보류결정을 내려 사태를 더욱 키웠다. 부산비엔날레는 독단적인 예술감독 선정에 항의해 지역미술인들이 보이콧과 함께 안티 행사를 추진했지만, 시 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은 것이 알려져 또다른 논란을 불렀다. 비엔날레 끝물인 요즘도 미술판 사람들은 비엔날레 개혁보다 차기 예술감독 자리와 비엔날레 지역
의 미술정치 구도에 더 관심을 쏟는 기색이다.
20세기 가장 걸출한 비엔날레 기획자 하랄트 제만이 역설했던, ‘시대를 발언하고, 형식을 발명하는 전시’를 국내 비엔날레에서는 언제쯤, 아니 과연 볼 수 있을까.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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