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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직선의 간결미, 일본의 전통과 현대 잇다

등록 2014-11-06 19:04수정 2014-11-08 09:47

최근 문을 연 교토국립박물관 신관인 헤이세이치신칸의 전경. 일본 전통 건축 요소를 기하학적 입면의 현대건축물로 표현한 역작이다. 해가 저물 때 비치는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사진 노형석 기자
최근 문을 연 교토국립박물관 신관인 헤이세이치신칸의 전경. 일본 전통 건축 요소를 기하학적 입면의 현대건축물로 표현한 역작이다. 해가 저물 때 비치는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사진 노형석 기자
‘건축거장’ 다니구치 요시오 역작
일 교토국립박물관 신관 가보니

한국 관광객들도 즐겨찾는 일본 전통유산의 메카 교토의 국립박물관 경내에 최근 명품 건축물이 들어섰다. 창립 117돌을 맞은 교토박물관의 미래를 상징하는 미니멀한 외관의 신관이 9월 개관했다. 현 일왕의 연호 헤이세이(平成)를 따서 ‘헤이세이치신칸(平成知新館)’으로 이름붙여진 소장품 상설관이다. 2004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리모델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축거장 다니구치 요시오(77)가 설계만 11년, 공사기간은 5년 걸려 완성했다.

지난주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의 박물관을 찾았다. 시치조 거리의 남문으로 입장했다. 문에서 직선축으로 잇닿은 보행로 북쪽 끝에 자로잰듯한 도형 같은 신관건물이 보였다. 수평 수직의 선들이 맞물려 이뤄진 건물 정면(파사드)이 눈앞으로 육박해온다. 건물 본체는 그 앞에 판 직사각형의 잔잔한 연못 뒤로 깊숙이 물러난 것이 특징이다. 연못 수면 위에 12개의 가는 금속기둥을 박고 건물본체에서 앞으로 쑥 나온 차양을 받치게 했다. 차양 안쪽 벽체는 일본 전통 다다미방의 문창호 같은 격자선을 촘촘히 친 유리벽이었다. 일본 특유의 간결, 담백한 건축공간을 현대건축 언어로 재해석한 것이다.

자연광이 격자창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대현관(그랜드로비). 사진 노형석 기자
자연광이 격자창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대현관(그랜드로비). 사진 노형석 기자
신관 옆 동쪽에는 1897년 르네상스풍으로 지은 고풍스런 본관(메이지고토칸)이 있다. 다니구치는 19세기 근대건축물인 본관에 신관의 건물 높이를 거의 똑같이 맞췄다. 반면, 신관의 겉모습은 미니멀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절제된 선, 면의 구성으로 채워 서양 고전장식으로 수놓은 본관과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서문을 마주보는 본관의 시선축과 남문을 마주보는 신관의 시선축이 박물관 광장 중앙에서 엇갈리면서 관객은 전통과 현대가 한공간에 공존한다는 것을 한층 실감하게 된다.

수평·수직 선들 맞물린 정면
건물 앞엔 직사각형 연못 파
일본 특유의 담백한 미학 ‘재해석’
내부 전시실 동선도 단순·명쾌
건축적 요소 최대한 덜어내

박물관 터에는 16세기 임진왜란을 일으킨 실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호코지란 절이 있었다. 2009년 신관 시공에 앞서 터를 발굴해보니 절의 회랑과 남문터가 드러났다. 박물관 쪽은 유적 기초부를 면밀히 파악해 흙으로 묻고 그 위에 조심스레 터를 잡은 뒤 문과 회랑의 기둥 자리를 신관 출입구와 연못 바닥 등에 동그란 금속선으로 표시했다. 원래 건물이 도요토미의 절이었음을 일러주려는 의도다. 아사미 류스케 진열품관리실장은 “박물관 주변에 사찰 등의 많은 문화유산과 풍성한 자연이 공존한다. 역사자연 경관과의 연관성을 살리는 데 유념하면서 건물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연못이 배치된 건물 정면 출입구 부근의 세부 모습이다. 사진 노형석 기자
연못이 배치된 건물 정면 출입구 부근의 세부 모습이다. 사진 노형석 기자
내부 전시실의 동선은 규모와 달리 단순, 명쾌하다. 1층 중심부를 2층 높이까지 틔운 홀 공간으로 만들어 크고 작은 일본 고대, 중세 불상들을 안치한 불상실이 감상의 구심이다. 여기를 기점으로 주위 1~3층마다 10여개의 격자형 전시실을 두고 서적, 염직, 금공예, 회화, 도자기, 고고유물들을 내보이는 얼개다. 불상실을 먼저 본 관객은 이후 취향 따라 전시실을 골라 들어가면 된다. 관람의 피로감을 최소화하려는 배려다. 각층 전시실 뒤쪽과 출입문 쪽에는 연못과 정원 풍경을 창으로 볼 수 있는 테라스 같은 공간을 따로 설치해 감상의 여운을 살리며 쉴 수 있도록 했다. 아사미 실장은 “진열장, 유물 사이 거리, 바깥 정원 조경까지 모든 요소를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했다”며 “학예사와 협의는 하지만, 건축가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다니구치 건축에는 곡선이 거의 없다. 세부 건축 요소들을 최대한 덜어 전체 건축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그의 미술관 건축은 뉴욕 모마를 비롯해 도요타 미술관, 도쿄 호류지보물관 등으로 절찬을 받았다. 모마 설계 당시 “돈을 더 많이 주면, 건물을 아예 사라지게 만들겠다”고 제안한 일화는 유명하다.

교토/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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