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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빌딩 4층 높이’ 부처님 서울시내에서 그림 잔치하시네

등록 2014-11-09 16:41수정 2014-11-09 17:49

개암사 괘불. 도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개암사 괘불. 도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개암사 · 미황사 ‘보물급 괘불’ 잇따라 선보여
스물여덟폭 삼베 위 현란한 빛깔로 관객 압도

빌딩 4층 높이의 거대한 부처님이 서울 시내 전시장에 잇따라 그림을 펄럭이며 나오신다. 절집 바깥에서 법회나 행사가 있을 때 내거는 큰 걸개그림인 괘불의 잔치다.

거대한 부처와 보살들의 자태로 가득한 그림들, 한국에서 가장 큰 불화로 꼽히는 두 명품 괘불들의 실물과 모사본이 깊어가는 가을 잇따라 서울시내에 전시 나들이를 나왔다. 높이 13.17m의 전북 부안 개암사 괘불(보물 1269호)의 실물과 높이 11.7m의 전남 해남 미황사 괘불(1342호)의 모사본이 그것이다. 개암사 괘불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에, 미황사 괘불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지하 1~4층 공간에 각각 내걸려 관객들을 맞고 있다.

두 괘불은 워낙 커서 절의 야외 법회 때가 아니면 일반인들은 볼 기회가 없다. 이번에 절과 박물관 쪽의 발원에 따라 이례적으로 시내 큰 전시장에 내걸려 관객들이 편안하게 조선시대 불화예술의 면면을 감상하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개암사 괘불은 꾸준히 전국 각지 사찰의 괘불들을 공개 전시해온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의 아홉번째 주인공이다. 1749년 제작된 이 괘불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석가삼존(釋迦三尊)을 중심으로 삼고, 상단에 다보여래와 아미타불,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그려 칠존상(七尊像)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괘불을 그린 화폭은 너비 30cm의 삼베 스물여덟폭을 이어서 만들었으며 그 위에 화려하고 현란한 ‘컬러풀’ 채색이 부처와 보살상을 덮고 있어 압도감이 대단하다.

만드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하단에 적힌 화기(畵記)를 보면, 일반 신도와 승려 250명이 발원했으며, 18세기 당대 최고의 불화 작가였던 승려 의겸(義謙)을 수장으로 삼고 영안(永眼), 민희(敏熙), 호밀(好密) 등 화승 12명이 함께 팀을 꾸려 완성시킨 작품이라고 나와있다. 1749년 영산회(靈山會) 의식에 쓰는 ‘영산 괘불(靈山掛佛)’로 만들어졌으나, 개암사에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사찰 의식 외에도 후대 기우제를 지낼 때도 사용됐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부안 지역에 가뭄이 계속되자 괘불을 걸고 부처에게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제를 청해 곧장 비가 온 사실이 여러차례 기록에 나온다. 절에 이례적으로 괘불과 같은 크기의 밑그림인 초본(草本)도 함께 전해지고 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크다. 전시는 내년 4월26일까지.

모사본이긴 하지만,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 나들이 나온 땅끝 미황사의 괘불을 보는 것도 실물 못지 않게 소중한 기회다. 지난 15년 동안 매년 10월 절 괘불제에 딱 두어시간 공개된 터라 서울에 괘불의 자태가 올라온 일 자체가 사건이라고들 한다.

미황사 괘불.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미황사 괘불.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이 미황사 괘불은 그림이 여느 불화와는 다르다. 어민 불자들의 안전과 풍어 기원이 많은 바닷가 사찰 특유의 성격을 반영한 색다른 배경과 구도를 보여준다. 상면에는 오색 기운이 구름덩이 속에 피어오르는 가운데 천상의 거대한 부처가 화폭을 가득 채우고, 아래 쪽에 보살 대신 용왕과 용녀상이 그려졌다. 신령한 가지 모양의 기운을 담은 화병을 들고 수수한 표정으로 부처를 옆에서 받들고 있는 용녀의 모습을 주목할 만하다. 1727년 일곱명의 스님들이 역시 팀을 꾸려 만든 이 작품은 크기와는 별개로 본존불 부처의 은은하고 장중한 표정과 화폭을 채운 자태의 압도감이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녹색과 붉은색, 분홍, 황토색 등을 밝은 톤으로 색바림해 화면이 무겁지 않으면서도 부처의 공덕 세계를 장엄하게 펼쳐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를 일으킨 것은 3년여 걸린 괘불의 모사 작업을 위해 절의 주지 금강스님과 9명의 장인·전문가들이 들인 열정과 인내의 공덕이다. 스님은 수년전 미황사 대웅전에 있는 국내 유일의 천불도 조각들이 묵은 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시름에 잠겼다. 고민 끝에 절 그림들을 하루빨리 모사해 원형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이번 전시를 향한 연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화장인인 이수예(42)와 박진명(43)씨 부부가 중심이 되어 이 걸작 괘불의 도상과 색채는 물론 색의 바림과 세월에 따른 얼룩, 훼손 흔적까지 꼼꼼하게 옮겼다. 4일까지 모사본을 선보이고 끝내려던 것을 예배를 위해 몰려드는 불자들과 지인들의 요청에 못이겨 11일까지로 전시기한을 늘렸다고 한다. 천불도와 반자연화도, 포벽나한도 등 이 절이 자랑하는 다른 명품 불화들도 모사본으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02)733-1981.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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