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조선사료집 집속에 나온 공재 윤두서의 의복이 보이는 자화상. 도판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학술심포지엄서 새 쟁점들 제기
17~18세기 문인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국보 240호)은 한국 회화사에서 수수께끼가 많은 명작으로 유명하다. 현전하는 18세기 이전 유일한 자화상인 이 그림의 핵심은 얼굴이다. 화가 내면을 투영한 듯한 날카로운 눈매와 불꽃처럼 일렁거리는 다기한 수염다발의 묘사 등이 강렬하다. 얼핏 보면, 상체 없이 정면의 얼굴과 머리통만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측면 구도에 정장 차림 일색인 조선시대의 여느 초상과는 전혀 다른 파격에 채색·음영 등의 서양 기법까지 쓰고 있어 학계는 수십년간 이 그림의 실체와 제작 경위를 놓고 입씨름을 거듭해왔다.
애초 핵심 쟁점은 왜 얼굴만 그려 넣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1996년 미술사학자 고 오주석이 1937년 조선총독부 자료집에 실렸던 도포 차림의 원래 도판을 찾은 데 이어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도 복식 차림과 귀가 보이는 적외선 도판을 공개하면서, 자화상은 의복 차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학계는 의복이 왜 지워졌는지 등을 놓고 다시 논란을 벌여왔다.
적외선 촬영 뒤 확인한 귀·의복
안휘준 교수 “표현 수준 낮아
후대 누군가 그려넣었다” 주장
극사실적 묘사 도구 구리거울
조인수 교수 “정밀성 떨어져
과장·변형 시도해 그린 것” 견해
복잡다단한 자화상 논란이 최근 새 국면에 접어든 낌새다. 공재 서거 300주년을 앞두고 특별전 ‘공재 윤두서’(내년 1월18일까지)를 열고 있는 국립광주박물관이 멍석을 깔았다. 지난달 26일 이 박물관에서 열린 공재 윤두서 학술심포지엄이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와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수미·문동수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관 등이 ‘자화상’의 새 쟁점들을 거론하며 논쟁 2라운드를 펼쳤다.
■ 귀와 의복은 후대 그린 것? 안휘준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자화상의 귀와 옷깃은 후대에 그려 넣은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귀 부분은 2006년 박물관 적외선 촬영 당시 얼굴상 양옆에 콩알만한 크기로 희미하게 그려진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안 교수는 “단순 어색한 모양의 귀는 눈, 코, 입 등에 비해 표현이 너무 떨어져서 공재가 그렸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1710년 숨진 친구 심득경을 기려 공재가 그린 초상화에 풀어낸 정교한 귀의 묘사와 필력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도 근거다. 옷깃 역시 후대 화폭 뒷면에 그려 넣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다. 분명히 보이는 얼굴만이 공재의 진짜 작품이란 얘기다.
■ 구리거울 보고 자화상을 그렸을까? 특별전 전시장에는 공재 자화상과 함께 자화상을 그릴 때 썼다는 일본 에도시대 구리거울(백동경)도 함께 나왔다. 조인수 교수는 이 금속거울이 정밀하게 얼굴을 비춰주지 못하므로 자화상의 극사실적 묘사는 거울을 통한 관찰 결과로 보기 어렵다고 단정했다. 그는 서구에서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15~16세기 르네상스기에도 유리 평면거울보다 볼록거울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어느 정도 과장과 변형을 시도한 공재 자화상은 정확한 실제 모습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토론자인 문동수 연구관은 “금속제 거울은 연마할수록 오늘날 거울처럼 투명한 형상을 비출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박물관 소장 금속거울들 상당수가 현재 거울과 비슷할 만큼 상이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 화폭 뒷면에 그리지 않았다? 공재 자화상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원래 그린 상체 의복 부분이 왜 사라졌느냐는 의문이다. 오주석은 숯으로 그린 의복이 1960년대 장황(표구) 과정에서 잘못 처리돼 30년대 사진의 의복선이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반면,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화폭 뒷면에 의복선이 그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며 30년대 사진은 뒤에서 불빛을 비춰서 의복선이 좀더 명확히 보였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이수미 연구관은 “박물관에 소장한 다른 초상 초본들을 확인해보니 화폭 뒤에 필선을 그려 넣은 배선법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며 이 교수 추정을 사실상 부정했다.
공재 자화상은 최근 그림을 싼 비단이 변색되고 액자도 헐거워져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과 수리를 협의중이다. 박물관 쪽은 “수리를 하면, 화폭 뒷면에 필선을 그렸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안휘준 교수 “표현 수준 낮아
후대 누군가 그려넣었다” 주장
극사실적 묘사 도구 구리거울
조인수 교수 “정밀성 떨어져
과장·변형 시도해 그린 것” 견해
화가 강요배가 그린 공재선생 측면상. 도판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공재 윤두서가 자화상을 그릴 때 썼다고 전해지는 거울 백동경. 자화상 옆에 함께 전시되어 있다. 도판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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