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명심 사진집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중에서.
십여년간 티베트·라다크·부탄서
황야의 풍경·아이들 모습 등 담아
황야의 풍경·아이들 모습 등 담아
사진가가 일곱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승려였다. 망자를 기리는 염불을 하러 절에 갈 적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의 아비는 서방정토로 떠났다고, 머나먼 서쪽으로 끝없이 걷고 또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으로.
1960년대 이래 ‘검은 모살뜸’ ‘백민’ ‘인상’ 등 명상적 사진연작을 쏟아내며 한국 사진판의 선승으로 불리게 된 원로작가 육명심(82)씨에게 어머니 말씀은 평생 머리에 인처럼 박힌 꿈이었다. 노년의 영혼을 서방정토의 꿈으로 다시 사르며 티베트 고원과 언저리의 라다크, 부탄을 십여년 떠돌았던 건,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업보였다.
산자들이 지상에서 엿볼 수 있는 수미산 자락 서방정토는 오직 티베트였기에 작가의 눈길과 렌즈는 그곳의 강퍅한 자연과 투명한 하늘, 쫓기지 않는 사람들을 갈망하듯 좇았다. 육씨가 십여년간 집요하게 찍고 주시했던 티베트, 라다크, 부탄 사람들과 자연의 풍경들이 최근 사진집으로 나왔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사진·글씨미디어)이란 제목의 사진집은 광폭하고 장엄한 티베트의 산악, 황야의 풍경과 그 안에서 경건한 야생인으로 살아가는 남녀노소 주민들의 다양한 삶들을 담는다.
육명심 사진들은 근경 못지 않게 원경의 세부가 중요하다. 돌바닥에 쪼그린 개, 고양이 같은 가축들 뒤로 마을 집들과 행인들의 무심한 뒷 모습이 스쳐간다. 거친 질감의 돌벽과 돌계단 위 아래로는 비쭉 조약돌처럼 얼굴을 내민 아이들이 보인다. 낡은 사원건물 이곳저곳, 시장 이구석 저구석으로 돌아다니거나 산길을 지나가는 숱한 사람들이 사진들 속에서 움직인다.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흙냄새 피우며 사는 사람들, 불교의 해탈을 향해 오체투지, 일배일보하는 순례객들의 너덜거림도 드러난다.
작가는 지난해 티베트 전지역을 동쪽에서 서쪽끝까지 횡단했다. 중국 본토와 통하는 철도, 도로 개통 뒤 뽕밭이 바다로 변하듯 티베트의 정경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작가는 사진집 후기에 쓴다. “그동안 이곳과 맺었던 인연과 추억을 이 한권의 사진집으로 봉인한다. 아무쪼록 불국토의 나머지 나라들이 티베트의 비극을 되풀이함 없이 그들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고스란히 지켜나가기를. 그래서 여기 실린 사진들이 지나가버린 날들의 한낱 기록으로 남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도판 글씨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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