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미술 동네에선
세월호 등 이슈에 굼뜬 대응
소장작가들은 심령세계 탐색
원로작가 그림들 ‘블루칩’ 부상
“사회 보수 퇴행 반영” 지적도
비엔날레 검열논란에 ‘시끌’
건축·사진 분야선 성과 빛나
세월호 등 이슈에 굼뜬 대응
소장작가들은 심령세계 탐색
원로작가 그림들 ‘블루칩’ 부상
“사회 보수 퇴행 반영” 지적도
비엔날레 검열논란에 ‘시끌’
건축·사진 분야선 성과 빛나
올해 미술판은 ‘무기력’과 ‘퇴행’의 징후들이 뚜렷했다. 원로 ‘어르신’ 작가들의 40여년 전 벽지 같은 그림이 잘 팔리는 ‘블루칩’ 으로 뜬 반면, 많은 소장작가들은 귀신과 무속에 빠져들었다. 세월호 침몰과 양극화 같은 현실 이슈들이 터져나오는데도, 작가들 대응은 굼떴고, 비엔날레와 국공립 미술관들은 숱한 적폐를 드러냈다. ‘성찰’과 ‘저항’의 힘을 잃은 미술인들은 눈치보기만 했다.
■ 귀신에 홀린 작가들
‘미디어시티 서울 2014’(9~12월 서울시립미술관), 양아치 개인전(6~7월, 학고재화랑), 김성환 개인전(8~11월, 아트선재센터), ‘애니미즘’ 전(1월 일민미술관) 등 소장 작가 전시들은 유령, 귀신, 무속 같은 심령세계를 탐색하는 흐름을 주로 보여주었다. 작가 박찬경씨가 기획한 ‘미디어시티 서울’은 ‘귀신, 간첩, 할머니’란 주제로 근현대기 아시아의 식민지, 냉전의 역사를 색다른 차원에서 조명했다. 대안이 모호한 신자유주의 시대, 전망을 못찾은 작가들이 불가사의한 낭만성에 탐닉하는 것(평론가 유진상)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도피적 정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퇴행적 성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시장에서는 대형화랑들이 띄운 정상화, 하종현, 박서보 등 70년대 단색조회화(모노크롬) 원로 작가의 작품들이 상종가를 치면서 집중수집 대상이 됐다. 단색조 태동에 큰 역할을 했던 이우환 작가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서 6월 설치전을 열었으며, 하종현·박서보씨도 생애 처음 서구 유력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며 블루칩 작가로 떠올랐다. 평론가 이영욱씨는 “서구 컬렉터들의 시장 수요 변화를 업은 모노크롬 득세는 새 콘텐츠가 빈약한 우리 미술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사회의 보수 퇴행을 반영한 흐름”이라고 했다.
■ 바람 잘 날 없었던 비엔날레들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냈던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 오월’이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내용으로 시 쪽이 전시를 불허하면서 검열논란이 불거졌다. 동료작가들이 작품을 철회하는 등 파문이 일자, 전시 유보를 결정한 이용우 비엔날레 재단 대표는 사퇴했다. 그러나 작품은 끝내 걸리지 못해 무력한 재단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부산비엔날레는 프랑스기획자로 감독을 교체한 오광수 전 운영위원장의 무리수로 지역 미술인들이 사상초유의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오 위원장은 사퇴했으나, 준비 부실로 역대 최악의 비엔날레란 비판과 관객들 외면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정형민 전 관장이 지인을 학예사로 부당채용한 비리에 연루돼 직위해제되고 검찰에 고발당했다. 6월 지방선거 뒤엔 수장이 바뀐 지자체 산하 미술사업들도 내홍이 잇따랐다. 대구시 쪽은 이우환 작가에게 간청해 추진해온 ‘이우환과 친구들’ 미술관 계획을 새 시장이 예산문제를 이유로 백지화시켜 후유증을 앓게 됐다. 인천시도 시장이 바뀐 뒤 산하 문화재단의 백령도아트프로젝트를 중단해 참여작가들과 갈등을 빚었다. 미술의 공공적 작동방식에 무지하고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는 관의 고질에서 비롯된 사건들이다.
■ 아카이브 바람과 협동조합
80년대 화랑, 미술관의 전시를 재현한 소마미술관의 ‘레트로’전, 아르코미술관의 ‘미술을 위한 캐비닛’전, 스페이스 오뉴월의 ‘응답하라 작가들’ 전 등 작품 작가의 관련 기록들을 수집, 분석한 아카이브 기획전도 유행했다. 자료들을 제시한 맥락과 역사적 의미보다 포장재로서 아카이브를 끌어쓰는 경우가 많아 개념에 대한 정리와 이해부터 시급하다는 지적들이 적지않았다. 현장의 젊은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서울 영등포 커먼센터처럼 협동조합 형식의 조직을 꾸려 ‘잉여세대’ 작가·기획자들의 목소리를 내거나, 작가의 노동권과 임금지급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터져나왔다.
■ 우울함 속 빛난 성과들
6월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서 건축가 조민석씨 팀이 분단시대 남북 건축의 흐름들을 주제로 출품한 ‘한반도 오감도’가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서울시가 도시건축 정책을 직접 관장하는 총괄건축가를 신설해 승효상씨에게 맡긴 것도 건축계의 의미심장한 변화다. 사진동네는 진도 팽목항과 밀양, 강정 등 전국 각지의 투쟁 현장을 발품들여 뛰어다닌 다큐사진가들의 현장 작업들과, 사진가로는 처음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노순택씨의 성취가 돋보였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양아치 개인전의 요괴가면 쓴 인물 사진
부산비엔날레에 나온 필라르 알바라신의 당나귀 설치작품
커먼센터의 개관전시 현장.
베네치아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 트로피를 치켜올린 건축가 조민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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