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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진실에 대한 배반…그게 사진의 마력이죠”

등록 2014-12-31 19:24수정 2015-01-01 00:30

지난 29일 저녁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노순택 사진가. 그는 “사진가는 카메라 뒤에 숨어 사진 속에서는 볼 수 없다. 유화 뒤로 얼굴을 감춘 사진가의 모습을 인터뷰 사진으로 실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29일 저녁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노순택 사진가. 그는 “사진가는 카메라 뒤에 숨어 사진 속에서는 볼 수 없다. 유화 뒤로 얼굴을 감춘 사진가의 모습을 인터뷰 사진으로 실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인터뷰] 다큐사진가 노순택씨
“사진가는 언제나 카메라 들고 현장의 목격자가 되어야 해요. 하지만 정작 나온 사진들은 현장의 진실을 배반하곤 하지요. 제가 사진을 의심하면서도 매혹을 품고 몰두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다큐사진가 노순택(43)씨가 털어놓은 ‘사진론’이다. 지난 한해 그의 작업들이 미술계의 가장 도드라진 ‘현상’으로 지목된 배경에 대한 설명처럼 들렸다. 그는 지난해 9월 사진가로는 역대 처음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특히 과거 어떤 사진가들도 갖지 못했던 폭넓은 작업 반경과 특유의 형식미학이 미술인들 사이에 줄곧 화제가 되곤 했다.

지금 사진계에서 노씨는 사회적 이슈의 현장과 미술관의 백색 공간을 함께 섭렵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 그는 전시를 준비하는 틈틈이, 세월호 유족들의 광화문 농성장과 기륭전자 복직 투쟁 현장 등에 출근해 셔터를 눌렀다. 저녁 나절에는 서울 서촌의 전시공간 류가헌이나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찍은 컷들을 정리하는 노씨를 볼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전시는 현장 사진이면서도 실험성과 보는 재미가 색다른 사진들로 채워졌다. 용산현장과 대추리 현장의 사진 프레임들을 절묘하게 뒤틀거나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를 연극처럼 포착한 작업들은 화랑 관계자들의 시선까지 끌어모았다.

고발과 기록 고집하면 지루해져
다큐사진가는 도덕군자 아녜요

용산, 대추리, 강정, 세월호 등
‘국가 오작동’ 현장엔 어김없이
그가 잘라낸 프레임 속에는
약자에 잔혹하지만 무능한 국가가
블랙코미디나 설치작품처럼

영악하게 사진으로 질문하는거죠
사진이란? 뒤틀린 현실이란?
또, 사진으로 뭘 말할 수 있는지

새해 벽두를 앞둔 지난 29일 저녁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는 오래전부터 전시장과 현장의 ‘투트랙’을 오가는 것이 자신의 성향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절박한 약자들 상황을 이용하는 거다, 정직한 스트레이트 다큐사진의 본령을 거스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들이 있지요. 사실, 다큐사진가는 도덕군자가 아니죠. 작가적 욕망을 간직한 이들입니다. 윤리적인 고발과 정직한 기록만 집착하면 다큐 자체가 지루한 도식이 되어버립니다. 찍는 행위는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다기한 의미를 표출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저는 영악하게 질문하는 거지요. 사진이란 매체가 무엇인지, 국가가 오작동하는 뒤틀린 현실이 무엇인지,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미술관에선 그런 방식도 나름 유효하다고 봐요.”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이라고 이름 붙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그는 10여년간 한국 사회를 달구었던 이슈의 현장과 사건을 ‘아트’의 시각에서 조망하면서 조작을 은폐하는 사진매체의 악마성도 드러내 주었다. 매향리 미군사격장, 여중생 압사사건, 평택 대추리, 쇠고기 수입 파동, 용산 참사, 쌍용차 대량해고, 천안함 침몰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 밀양의 고압송전탑 반대 운동,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세월호 참사까지 약자들에게 잔혹하면서도, 국가체제의 ‘무능’을 드러내는 풍경들이 한켠에 있었지만, 상황을 나름 의도적으로 빚어내려는 사진가들의 기괴한 움직임도 그는 담아냈다.

그는 자기 작업을 “어떤 뚜렷한 스타일을 의식하고 찍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국가폭력과 분단체제의 질곡이 작동하는 현장들의 상황을 수신하는 안테나가 되고 싶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화된 사진들이 따라 나온다”는 풀이였다. 아름답지만, 섬뜩한 설치조각 같은 용산 참사현장의 남일당 폐허 사진이나 현장 채증 경찰관과 그를 역채증하는 강정 시민운동가의 대치 사진들이 그렇다. 국가 전시기관에서 약자에게 폭력을 자행한 다른 국가기관을 꼬집는 불온한 사진들을 예술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소심한 복수’가 아닌가 싶다”고도 했다.

현장에서 ‘찌라시’ 만들고 빨랫줄에 사진을 걸면서 쌓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개인적 성찰이 가능한 다른 방식, 다른 장소를 찾아다니며 또다른 표현의 통로를 모색한다는 게 바로 그가 말하는 투트랙 작업이었다. 새해에는 하반기 미국 시애틀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전 출품이 예정되어 있지만, 그외에는 다른 전시를 접고 현장사진과 명상적인 새 작업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한다. 내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그동안의 한국 사회 분단 연작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대형전시를 짜고 있다는 작가는 “앞으로도 지금껏 해오던 대로 전시장과 현장을 함께 오고 가는 게임을 지속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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