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을 수집하다’전의 들머리 모습. 조선총독부 홀의 벽화가 재현되어 있다.
국립박물관 ‘동양을 수집하다’ 전시
총독부박물관 등 수집 컬렉션 소개
설명에 일본 정치적 의도 안 드러나
총독부박물관 등 수집 컬렉션 소개
설명에 일본 정치적 의도 안 드러나
한국 문화유산의 전당인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에 식민지시절 흑역사가 꼭 들어가야 할까. 일제가 식민문화정책 속내를 깔고 만든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우리 박물관 역사에 포함시킬지는 계속 논란거리였다. 1915년 경복궁을 깔고 펼쳐진 근대박람회(조선물산공진회)를 계기로 생긴 총독부박물관과 망국 뒤 들어선 덕수궁 이왕가박물관은 조선은 물론, 아시아 각지의 고고 미술유물을 수집, 전시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8년 최광식 관장 취임 전까지 모든 기록물에서 국립박물관 기점은 해방 뒤 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한 1945년이었다.
그러나, 당시 최 관장은 2009년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 행사를 주도하면서 국립박물관 시초를, 일제의 강권으로 황실이 제실박물관을 세운 1909년까지 끌어올렸다. 일제의 유물 수집과 전시까지 국립박물관의 전사로 사실상 편입시키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지금도 국립박물관 연구사들은 이런 억지춘향식 역사재편을 공공연히 비판하곤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두달여째 열리고있는 ‘동양을 수집하다’전은 묵은 논란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전시다. 총독부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이왕가미술관 등에서 식민지시대 수집한 동아시아, 서역의 외국 컬렉션을 집중소개하는 게 전시의 겉뼈대다. 1910~1920년대 세키노 다다시 등의 문화재학자와 골동상들이 입수해 총독부에 판 고대 중국유물들이 먼저 나온다. 한나라의 금속기물과 옥, 칠기, 기와, 남북조시대의 반가사유상, 무덤의 석문, 수십여점의 불비상 등이 그것인데, 독특한 조형미와 용도가 시종 흥미롭다. 광산재벌 구하라 후사노스케가 1916년 기증한 오타니탐험대의 서역벽화 컬렉션과 20세기초 일본 화단 대가들이 그린 인물, 풍경, 전쟁화들, 옛 총독부 홀에 그린 와다산조의 대벽화, 덕수궁 정원 물개의 모델상 등도 볼 수 있다.
왜 전시한걸까. 일제가 아시아 문화재를 수집한 역사적 상황을 조명하려 했다고 박물관 쪽은 밝혔다. 그런데, 전시 패널에 붙은 설명은 박물관 유물카드나 문서에 기록된 당대 골동상, 연구자들의 입수 경위를 언급하는 정도다. 아시아 유일의 근대 문명국을 자처한 일본에 의해 어떤 학문적, 정치적 의도로 수집된 것인지 심층적으로 사료를 분석해 맥락을 따져보겠다는 취지는 흐릿해지고, 컬렉션 자체에 끌려다닌다는 인상이 묻어난다. 의미보다는 입수, 소장과정에 모호하게 기울어진 패널 설명 탓에 국립박물관이 총독부박물관 덕분에 나름의 국제성과 다양한 컬렉션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고 관객들이 착각할 수 있는 소지도 보인다.
국립박물관 뿌리에 대한 논란을 감안한다면, 일제가 수집한 컬렉션을 다룬 이 전시는 좀더 충분한 시간과 공력을 들여 맥락을 정리하고 내놓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지금 전시는 신기하고 낯선 외국 유물들이 박물관에도 많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11일까지. (02)2077-9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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