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화 씨의 작품 ‘분홍 연작’
최민화 작가 40년 담은 첫 화집 ‘분홍’
들뜬 분홍빛깔로 뒤발한 화폭 속에 널브러진 이들은 도시 ‘룸펜’들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사지를 좍 벌리고 벌판에 앉은 양아치와 부랑자들. 기타치고 담배피며 바람을 맞는 이 사회적 소외자들의 나른하면서도 비장한 자태를 작가 최민화(61)씨는 한국현대미술의 중요한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사람들이 외면했던 그 비루한 청춘들 모습에서 1980~90년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상실과 희망, 변혁의 섬세한 감성과 90년대 이후 좌절의 상실감까지 함께 살려냈다. 무엇보다 그는 제도권 화단이 기피하던 분홍빛깔을 격정적인 한 시대의 색깔로 재창조해냈다. 최철환이란 본명을 들꽃이란 뜻의 ‘민화’로 바꾼 운명 탓일까. 참여미술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최민화의 이름은 낭만적 색채가 넘실거리는 화면으로 현실을 통박했던 반항아 면모로 남았다.
80~90년대 ‘분홍’ 연작으로 한국 형상회화의 중요한 성취를 일구었다고 평가받는 최씨가 회갑을 넘겨 첫 화집 <분홍>(나무아트)을 출간했다.
40여년에 걸친 작가의 다양한 작업들 가운데 특유의 몽롱한 감성이 시대상황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던 ‘분홍’시대(1989~1999)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최민화 회화의 집대성이다.
바로크 회화의 인물상을 연상케하는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을 그린 68년작 첫 유화 작품이 화집의 맨 끝장에 들어간 것부터 의미심장하다. 거꾸로 책장을 넘기면, 참여미술의 태동기인 80년대 전반의 거친 민중화들이 80년대 중후반 가투와 항쟁시기 이한열 열사의 ‘부활도’와 대작 ‘신세계 전투’를 거쳐 ‘기러기’‘개 같은 내인생’ 같은 분홍연작들로 이어진다. 이후 갈래쳐 나간 2000년대 이후 봉천동 청춘남녀들을 그린 회색 연작과 광고·잡지 콜라주 위에 우리 상고사의 풍경을 덧칠한 작업들까지 다기한 작품세계가 아롱져나온다. 책을 낸 나무화랑 기획자 김진하씨는 “지난 20여년간 통음과 주벽으로 건강을 해쳐 칩거중인 작가에게 이번 화집은 재기를 재촉하는 격려와 채찍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화집에 작가노트의 일부로 실린 절규 같은 글귀를 읽는다. “끝없이 깊은 절망의 가장 밑바닥을 칠 때, 비로소 노래할 수 있다. 젊음을…청춘의 뒤안길을…아련한 꿈의 황금빛 번쩍거림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나무화랑 제공
최민화 작가의 첫 화집 <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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