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자의 모습.
울림과 스밈
한국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책을 찍은 나라다. 70년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고려말 불교서적 <직지심체요절>은 1377년 찍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세계 학계에서 공인받았다. 그러나 공인된 활자 실물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개성 출토품으로 알려진 활자 1자가 있지만, 전래경위가 불분명하다. 그런데 2010년 이후 격변이 생겼다. 그해 <직지…>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는 ‘증도가자’가 남권희 경북대 교수에 의해 공개된 이래 지금까지 200자 넘는 고려활자 추정 실물이 쏟아져나왔다. 연구경험이 거의 없는 학계는 혼돈에 빠졌다.
5년새 고려제 추정 금속활자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온 사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활자들을 다 국가문화재로 지정해야할까. 검증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11년 문화재위원회가 증도가자 소장자의 국가문화재 지정 신청을 후속연구가 필요하다며 보류한 것이나, 2014년에야 문화재청이 여론에 떠밀려 증도가자를 포함한 고려 추정 활자에 대한 기초학술조사 용역에 나선 건 이런 딜레마 탓이었다. 그런데 증도가자를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고 주장해온 남 교수가 이 검증 용역을 맡은 경북대 산학협력단 책임자라는 사실이 용역 보고서와 함께 알려지면서 신빙성 논란이 불거졌다. 남 교수는 전부터 수년간 국내외 전문기관에 의뢰해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왔다. 1239년 금속활자본을 목활자로 바꿔 찍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글자와 증도가자가 같고, 활자에 묻은 먹의 방사성탄소연대가 11~13세기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용역연구의 결론은 더 나갔다. 증도가자류 101자 외에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본 7점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활자까지 모두 고려시대 주조되고 일부 사용됐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었다.
용역연구에서 서지학, 보존과학 분야 전문가들이 30명 이상 참여해 활자 실물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축적한 것은 성과다. 다만, 모두 먹이나 서체를 분석한 간접 증거들이고, 활자 자체 연대를 규명하지는 못했다. 이를 밝힐 과학기술이 미비하고, 증도가자로 찍은 책도 전하지 않는다. 진짜 실물임을 입증할 결정적 ‘팩트’가 없는 것이다. 진위 판별의 또다른 관건인 출처와 전래경위도 일제강점기 개성에서 일본에 건너간 뒤 90년대 다시 들어왔다는 전언만 나올 뿐이다. 2013년 소장자가 증도가자가 담긴 고려 유물이라며 공개했던 초두와 수반 등 청동용기의 연대 분석도 연구에서 빠졌다. 이런 한계 탓에 학계에서는 고려 먹을 조작된 활자에 붙일 수 있다거나, 만월대 도굴품이라거나 중국에서 유출됐다는 등 숱한 반증설들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국내 고활자 전문가는 남 교수를 포함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적다. 문화재위원회가 앞으로 진행할 국가문화재지정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시간에 쫓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연구진을 모아 권위자 남 교수의 용역연구까지 검증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진위를 가릴 객관적 요건이 끝내 충족되지 않는다면, 무기한 지정보류상태로 놓아두는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평생 전체주의에 맞선 철학자 칼 포퍼는 반증 가능성이 없는 학문은 과학이 아니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 논란 많은 유물에 대해 다기한 반증의 창구를 열어두고 연대와 출처 등을 샅샅이 검증하는 태도가 우선이다. 안휘준 전 문화재위원장의 말처럼 ‘소종래(所從來:근본 내력)’를 따지지 않고 지정여부에 급급하면, 세계 금속활자 선도국의 권위와 품격이 한순간에 추락하는 ‘후과’를 면치 못할 것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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