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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독] ‘조선의 폼페이’ 공평동 유적 고스란히 보전된다

등록 2015-04-30 01:08

지난해 발굴조사로 드러난 서울 공평동 조선시대 생활유적들. 멀리 종로의 도심부 건물들을 배경으로 현재 지표 아래 넓은 골목길(가운데)과 양옆의 집터, 주춧돌 등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최근 서울시와 건축주의 합의로 이 유적들의 전모가 온전히 보존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지난해 발굴조사로 드러난 서울 공평동 조선시대 생활유적들. 멀리 종로의 도심부 건물들을 배경으로 현재 지표 아래 넓은 골목길(가운데)과 양옆의 집터, 주춧돌 등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최근 서울시와 건축주의 합의로 이 유적들의 전모가 온전히 보존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올 1월 공개된 골목길 생활유적
최근 시-개발업주쪽 합의안 내
보존처리뒤 임시 이전했다
새 건물 지하 1층에 복원 전시
시민들의 역사체험공간으로
한국 문화유산 역사에 획을 긋는 ‘기적’이 만들어졌다. 올해 1월 발굴 성과가 공개된 뒤 ‘조선의 폼페이’란 별명을 얻으며 보존 여론이 불거진 서울 도심 종로타워 뒤쪽 공평동의 조선시대 골목길, 거리 유적(<한겨레> 1월15일치 26면)이 고스란히 살아남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연면적 3만7700여평에 달하는 공평 1, 2, 4 재개발 지구의 조선시대 골목 유적을 전면 보존하기로 최근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이 유적 위에 지하 8층, 지상 26층짜리 빌딩 신축을 추진중인 시티코어 등의 투자자 모임과 수개월간 논의를 거듭한 끝에 얻어낸 결실이라고 한다.

서울시와 문화재계에 따르면, 시 쪽은 최근 시티코어 등 건물 개발업주 쪽과 유적 전면 보존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하고 조만간 유적보존 협약식을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부터 연말까지 한울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한 공평동 유적 전체가 복원, 보존돼 역사 체험공간으로 선보일 전망이다. 합의안은 빌딩 신축에 앞서 유적을 보존처리한 상태로 떠서 일단 이전시켰다가 건물이 지어지면, 지하 1층으로 다시 옮겨 원래 얼개대로 복원 전시하는 것이 뼈대다. 유적이 들어설 지하 1층 공간은 이 건물 투자자가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시 쪽이 양도받아 관리하며, 전시 공간 설계는 서울시총괄건축가인 승효상씨가 맡게 된다. 시 쪽은 대신 소유자에게 건물 용적률 완화, 세제 혜택 등을 주기로 했다. 보존과학자들과 전문업체들이 지난달부터 건물터의 일부 나무 구조물을 떼어내 보존처리 작업을 시작했고, 다음주부터 주요 유적에 대한 일차 보존처리·이전 작업이 본격화된다.

대도시 도심 유적이 원상대로 전면 보존된 것은 국내 발굴 사상 처음이다. 인근 청진동이나 공평 3·5·6구역에서도 1990년대 이래 재개발 과정에서 피맛길 등 조선시대 가로 유적이 드러난 적은 있다. 그러나 유적의 극히 일부분만을 떠서 다른 곳에 옮겨 전시하고, 대부분은 파묻거나 훼손했다.

공평동 유적은 서울 사대문 안 역사 도심에서 현재 유일하게 전모를 간직한 조선시대 생활유적으로 꼽힌다. 조선 전기부터 중후기, 구한말, 지금까지의 도시 역사가 골목길, 가로를 중심으로 켜켜이 보존된 시간 박물관과도 같다. 지난해 발굴조사에서는 현 지표면 4~5m 아래에서 30동이 넘는 상가, 주거지 등의 건물터와 골목길, 3m 넘는 가로 등이 드러났고 백자와 기와편, 소뼈 등의 유물들도 나왔다. 건물터 사이 골목길은 조선 전기부터 지금까지 기본 축선과 얼개가 거의 바뀌지 않았고, 각 시대 건물이 내려앉거나 불탄 자리 위에 새 건물을 계속 지어 올리며 도심부가 계속 형성된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거대한 대청마루가 있는 독특한 구조의 ㅁ자, ㄴ자 형 건물터는 육의전 등이 있던 종로 옛 상가와 연관된 시설로, 조선 후기 도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됐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달까지 수차례 열린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는 신희권(서울시립대), 안창모(경기대) 교수 등은 “사대문 안에 유일하게 남은 조선시대 도시유적으로 보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승효상 건축가는 “박원순 시장이 터 매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유적을 살리는 데 적극적이었다”며 “강한 보존 여론과 시 쪽의 의지, 건물 소유주들의 선의가 기적적인 성과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안창모 교수도 “그동안 재개발 승인만 나면 유적들은 일부만 옮겨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당연시됐는데, 기존 도심 재개발 사업의 흐름을 뒤바꿨다는 점에서 앞으로 도심 역사유산 보전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반겼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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