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한국 작가 첫 출품 이래 가장 큰 성과
여성의 노동 소외 다룬 <위로공단>으로 쾌거
여성의 노동 소외 다룬 <위로공단>으로 쾌거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인 56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에서 본전시에 참여한 임흥순(46) 작가가 한국 작가로는 사상 처음 ‘은사자상’을 받았다. 198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 미술계가 처음 출품한 이래 가장 큰 성과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재단은 9일 낮 시내 산마르코 광장의 재단 건물에서 이날 공식개막한 비엔날레의 시상식을 열었다. 재단 쪽은 임 작가가 35세 이하 젊은 작가에게 시상해온 은사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하고 작가에게 상을 수여했다. 임 작가의 수상작은 한국, 동남아 등 아시아 각 지역 여성들의 노동 소외 문제를 다룬 95분짜리 다큐영화 <위로공단>으로 심사위원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1986년 처음 참가한 이래 95년부터 국가관을 세워 이후 2년마다 한국관 대표작가를 출품해왔으며, 이와는 별개로 본전시에도 일부 작가들이 초대를 받아 전시에 참여해왔다. 한국관의 경우 상설관에서 처음 전시했던 전수천씨가 출품한 1995년 이래 97년(강익중), 99년(이불) 연속으로 특별상을 받았으나, 본전시에 개별 초청받은 국내 작가가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장편 다큐영화로 미술제에서 수상했을 뿐 아니라, 은사자상이 본전시에 초대한 35세 이하 젊은 작가를 주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연령대가 훨씬 높은 임 작가의 수상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큰 이변으로 평가된다. 앞서 지난해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서는 조민석 건축가가 이끄는 한국관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어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한국 예술계와 더욱 각별한 인연을 갖게 됐다.
임 작가는 경원대(가천대) 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사회적 성격의 영상 제작에 줄곧 몰두해온 작가다. 2000년대초 ‘믹스라이스’라는 프로젝트 미술그룹을 결성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각도의 영상으로 풀어냈던 그는 2013년 제주 4·3사건과 강정마을 이야기를 함께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을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선보이며 영화계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다. 올해초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한국작가로는 6년만에 처음으로 초청받아 화제를 모았다. 수상작 <위로공단>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사용주의 비인간적 대우에 시달리는 공장 근로자,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그들의 작업현장을 다양한 시점으로 담고 있다. 작가는 본전시 작품 공개 뒤 기자들과의 현장 인터뷰에서 “40여년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가계를 이어온 어머니와 나를 도와준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이 다큐 작업을 시작했다”며 “‘시다’공으로 일한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매장, 냉동식품 매장에서 고생스럽게 일한 여동생의 삶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의 모든 미래’를 주제로 내건 이번 비엔날레의 최고 영광인 ‘황금사자상’의 국가관상은 100년전 민족 대학살의 기억을 현대미술의 맥락으로 다룬 아르메니아 관이 받았으며, 최고작가상은 아르세날레 국제전에 출품한 미국 작가 아드리안 파이퍼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이 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 가운데서 주목할만한 이를 선정해서 주는 ‘특별한 언급상’은 지난해 돌연 세상을 떠난 독일의 세계적인 미디어 작가 하룬 파로키, 시리아의 아트그룹 아보나다라 콜렉티브, 알제리 작가 마시니사 셀마니, 여성주의 미술의 대가 조안 조나스 작품을 전시한 미국관이 받았다. 앞서 수일전 발표된 평생공로상은 아프리카계 작가로 국내 광주비엔날레에도 출품한 엘 아낫츄이에게 돌아갔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고 평가되는 국가관과 작가, 평생공로자에게 황금사자상을, 본전시에 초청된 35세 이하 젊은 작가들한테는 은사자상을, 주목할 만한 참여작가· 큐레이터 등에게는 ‘특별한 언급상’을 시상하고 있다. 한국이 95~99년 연속 수상한 특별상은 상황에 따라 시상할 때도 있고, 하지 않을 때도 있어서 정기적으로 주는 상은 아니다.
베네치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임흥순 영화감독 겸 미술 작가
영화 ‘위로공단’의 한 장면
영화 ‘위로공단’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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